▲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가 지난 18일 광주광역시 아이돌보미 169명의 임금 소송 대법원 판결 직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공연대노조>

부모의 아이 양육을 지원하는 ‘아이돌보미’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아이돌보미 사업은 17년에 접어들었지만, 정부가 사용자인데도 필수복지 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년 전 소송 발단 “3년치 수당 지급” 요구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아이 돌보미 169명이 광주대 산합협력단과 건강가정연구개발원 등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지난 18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까지 7년7개월이 걸렸다.

사건 발단은 무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돌보미 A씨 등은 아이돌봄 지원법(11조)에 따라 광주광역시가 위탁한 서비스제공기관에서 근무했다. 기관들은 아이 보호자로부터 돌봄 제공을 홈페이지를 통해 요청받으면 아이돌보미들에게 문자를 통해 활동 가능 여부를 확인한 다음 해당 가정에 배정했다.

그런데 아이돌보미들은 각종 수당(연장·야간·휴일근로·주휴·연차휴가)을 받지 못하자 이들은 2016년 1월 기관들을 상대로 미지급 임금을 달라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반면 기관들은 “기관이 아이돌봄서비스 제공의 대가에 상응하는 직접적인 이익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다.

아이돌보미 시간·장소 구속 ‘사실상 육아 전담’

쟁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인정 여부였다. 아이돌보미들은 면접을 통과하면 자격 취득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기관들과 표준계약서 양식의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에는 수행 내용과 수당·계약해지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아이돌봄 업무를 하면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 통합업무관리시스템에 들어가 서비스 시작·종료 시각과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기록했다. 기관들은 활동일지를 토대로 이용자로부터 받은 이용료와 정부지원금을 합산한 금액을 수당으로 지급했다.

사무실 출근 의무는 없었지만, 업무는 사실상 기관들의 지휘·감독을 통해 이뤄졌다. 기관들은 전화·방문 모니터링으로 아이돌보미 활동상황과 서비스 제공 실태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아이돌보미들에게 전달했다. 또 이용자가 민원을 제기하면 아이돌보미를 교체했다. 아이돌보미들은 직무·집합보수교육도 이수하고 예약된 활동시간도 철저히 지켜야 했다. 만약 이용시간과 장소를 변경할 경우 반드시 기관에 연락하도록 정했다.

아이돌보미는 맞벌이 등으로 양육공백이 발생한 가정의 만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돌봄장소에 찾아가 이유식·젖병소독·기저귀 갈기·목욕 등의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실상 부모의 육아를 대신하는 일이다. 아이돌보미 종교가 드러나서도 안 됐고, 업무시 TV 시청이나 스마트폰 자제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기관은 지시사항을 아이돌보미에게 문자로 전달했다.

1·2심 판단 엇갈려, 기관 사용자성도 쟁점

1심은 이 같은 사실을 토대로 아이돌보미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이돌보미들이 수행하는 업무 내용은 대체로 기관이 정하고 나아가 업무수행 과정에서도 기관들이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고 있다”며 “아이돌보미들은 기관들이 알려주는 시간과 장소에서 서비스를 수행할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판시했다. 기관이 아이돌보미들에게 △활동일지 작성 △정산보고서 작성·제출 △건강검진 서류 제출 △보수교육 이행 등 서비스 이외 업무를 지시한 점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아이돌보미 선택에 기관들의 실질적인 재량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아이돌보미 지원자들은 결격사유가 없으면 양성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이후 표준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돌보미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더라도 광주시 각 구의 건강지원센터 등에 근로계약상 의무가 귀속된다고 봐야 한다”며 “센터 운영권한만을 위탁받은 기관에게 의무가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기관들의 사용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기관이 아이돌보미 지휘·감독”

대법원은 원심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아이돌보미 직무내용이 아이돌봄 지원법에 규정돼 있고, 매년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봄 지원사업 안내’가 복무를 규율하는 일종의 지침이 됐다”며 “기관은 이에 따라 아이돌보미들의 업무수행을 지휘·감독했다”고 판시했다. 2014년 4월~2015년까지는 근로계약서 명칭으로 계약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근무시간과 장소도 “아이돌보미들에게 원치 않는 조건 가정을 배정받지 않을 선택권은 있었지만,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는 최종적 권한은 기관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아이돌보미 활동 제재’ 역시 근로자성을 뒷받침했다. 기관은 아이돌보미들이 근무시간과 장소를 지키지 않으면 서비스를 중지할 수 있었다. 또 3개월 이상 활동하지 않으면 ‘활동 포기자’로 간주했고, 재활동을 원하면 면접을 거치도록 했다. 대법원은 아이돌보미들이 제3자를 고용해 기관에서 배정받은 업무를 대행할 수 없도록 하고, 추가적인 이윤을 창출할 수 없도록 금지한 부분도 기관의 지휘·감독으로 인정했다. 4대보험 가입과 퇴직금 지급도 근로자성 인정 요소가 됐다.

기관들의 사용자성도 인정됐다. 대법원은 “아이돌보미들을 면접해 채용을 결정하고 교육을 실시하며 문자메시지를 통해 업무 지시를 하고 활동일지를 점검하는 등 실질적으로 사용자로서 지휘·감독을 한 것은 서비스기관”이라고 판시했다. 이들 기관들이 지자체로부터 건강가정지원센터 운영을 위탁받았다고 해서 위탁운영자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며, 기관들이 아이돌보미들과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사용자라는 판단이다.

향후 소송 파장 전망 “정부 무책임에 경종”

아이돌보미의 ‘노동자성’ 인정은 상당한 파급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아이돌보미 2천여명이 제기한 소송이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이다. 아이돌보미들을 대리한 박치현 변호사(박치현 법률사무소)는 “아이돌보미 사업의 실질적 사용자는 정부인데도 책임에서 뒤로 물러나 있었다”며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 역할이 큰데도 재정 투입이 미흡해 돌봄노동자들이 저임금을 받고 일해야 했는데, 이번 판결로 경종이 울렸다”고 지적했다.

아이돌보미들도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바랐다. 아이돌보미 경력 15년차인 오주연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 분과장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아이돌보미들은 지금까지 노동자가 아닌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며 “그런데도 여가부는 제도 시행 후 10여년 간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에서 확정되면) 조속히 3년치 체불임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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