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소희 기자

정부로부터 산별노조 집단탈퇴를 금지한 규약·규정 시정명령을 받은 민주노총 4개 산별노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소송 과정에서는 노조가 규약규정을 통해 노조운영의 원칙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권리와, 행정관청이 해당 권리를 제재하고 침해할 수 있는지 등을 따져 볼 예정이다. <매일노동뉴스>가 13일 관련 쟁점들을 짚어 봤다.

4개 산별노조 행정소송 추진

민주노총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집단탈퇴를 금지한 금속노조·사무금융노조 규약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노조 조직 및 가입을 막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위반했다며 노동부의 시정명령 의결 요청을 받아들였다. 서울지노위는 이어 같은달 24일에도 입후보자가 공무원노조나 민주노총 탈퇴를 공약할 경우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의 공무원노조 선거관리규정이 노조법 위반이라고 결론내렸다. 5월에도 서울지노위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악지청이 요청한 화섬식품노조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 의결 요청을 승인했다. 마찬가지로 집단탈퇴 금지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이었다.

이들 노조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을 상대로 각각 시정명령 행정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노동부가 서울지노위에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했고, 서울지노위가 이를 의결해 최종적으로 각 노조에 규약 시정명령을 내린 주체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법률원을 중심으로 공동 대리인단을 구성하되, 소송은 노조별 사건에 따라 진행된다.

노동부 “지부·지회 조직형태 변경 가능”
노동계 “해당 규약 있다면 독립적 권한 없어”

노동부는 각 산별노조의 집단탈퇴를 금지한 규약·규정이 노조법 5조1항과 16조1항8호를 위반했다고 본다. 해당 조항에는 노동자의 자유로운 단결권을 보장하라는 내용과 조직형태를 변경할 경우 총회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금속노조는 기업노조 전환을 추진한 포스코지회 임원 등을 제명했다. 사무금융노조와 공무원노조는 각각 한국은행노조·금융감독원노조 탈퇴와 원주시지부 탈퇴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화섬식품노조는 집단탈퇴는 없었지만 같은 취지의 규약이 있다.

주요한 쟁점 중 하나는 지부·지회를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지부·지회가 독립적인 사단성(단체성)을 지니는지 비법인사단으로서 실질을 가지는지 등을 다툴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지부·지회는 노조의 하부조직으로 노조법상 노조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며 “이 때문에 조직형태 변경 권한을 지부·지회가 아닌 산별노조가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부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탈퇴 사건에서 지회의 독립성을 인정해 조직형태 변경 결의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201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집단탈퇴 금지 규약의 위법성을 강조한다. 다만 당시 전원합의체는 “하부조직에 불과한 지회 등이 산별노조의 통제를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조직형태의 변경을 결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관 5명도 “독자적인 단협 체결 능력이 전혀 없거나 상급단체의 위임을 받아 비로소 단협을 체결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면 노조로서의 실질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노동위원회가 시정명령을 의결할 때 해당 쟁점이 면밀히 검토되지 못했다”며 “행정소송에서는 다퉈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각 노조의 규약은 ‘우리 산별노조의 지부·지회는 대법원 판결이 말하는 독립성이 없다’는 선언”이라며 “만약 조직형태를 변경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사건이 생겼을 때 해당 조항의 존재가 지부의 독립성을 판단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노동관계법령에 위배되는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중구조 해소하자더니 산별노조 탄압”

소송에서는 노조 규약에 대한 정부의 시정명령 근거가 담긴 노조법 21조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에 위배되는 지도 다퉈질 전망이다. 지난해 4월부터 발효된 ILO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협약 3조2항은 “공공기관은 규약 작성에 관한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삼간다”고 돼 있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도 1994년 6월 규약 시정명령에 관한 구 노동조합법 조항을 결사의 자유 원칙에 따라 개정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권두섭 변호사는 “규약 시정명령제도는 내용에 대한 통제를 허용하고 있어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며 “ILO 87조 협약과 결사의 자유위원회 결정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규약·규정 시정명령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 노동자 개인의 단결권뿐 아니라 노조의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호일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산별노조인 공무원노조를 지키기 위해 대의원대회에서 자주적으로 만들어 낸 선거관리규정에 대해 정부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며 “노조 내 70개가 넘는 지부에 대해서도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릴 정도로 노조의 자율성·자주성을 탄압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라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노조가 규약을 통해 조직운영의 원칙을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헌법 33조1항의 단결권 및 노조법의 목적을 구현하는 것으로 노조의 자유와 재량의 영역”이라며 “이에 대한 행정관청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부·지회에 집단탈퇴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산별노조 흔들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는데 이중구조 개선에 효과적인 산별노조를 형해화하는 정부의 이 같은 시정명령이 모순적이라는 지적이다.

임영국 화섬식품노조 사무처장은 “기업별노조는 기업별 임금과 기업별 복지로 교섭이 귀결돼 기업이 보호하지 못하는 수많은 불안정 노동단위나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아우르기 어렵다”며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보다 유효한 노조 조직형태가 산별노조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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