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자 파업은 쟁의행위의 일종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다. 업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사용자도 노조의 파업을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 파업기간 동안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겠다고 노조에 약속한 사례가 있다. 지난 8일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강귀섭 코레일네트웍스 전 대표 이야기다. 사용자는 파업기간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음에도 왜 강 전 대표는 임금 일부를 지급하겠다고 한 것일까.

9일 <매일노동뉴스>가 2020년 7월 코레일네트웍스 노사합의 배경을 살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철도공사 자회사로 공사에서 운영하는 광역 전철역을 위탁 운영한다.

사문서 위조·행사는 무혐의

코레일네트웍스는 강 전 대표와 조상수 철도노조 전 위원장, 서재유 전 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현 부지부장)을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로 2021년 7월 고발했다. 강 전 대표 고발 사유에는 배임 혐의를 추가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 불송치 결정했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강귀섭 전 대표에 업무상 배임 혐의가 있다고 보고 불구속 기소했다. 노사 전 대표 모두 사문서 위조 및 행사 혐의는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가 된 것은 2020년 7월24일 체결한 노사합의서다. 당시 노사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에 대해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상 휴업수당 지급률에 준해 평균임금의 100분의 70에 해당하는 임금을 일할계산해 지급한다”고 합의했다.

강 전 대표가 이런 합의를 체결한 이유는 간단하다. 건강한 노조의 활동이 곧 회사의 이익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조가 적극적인 처우개선 투쟁에 나서기 전인 2017~2019년 코레일네트웍스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다. 원청인 철도공사가 시중노임단가에 낙찰률 88%, 90%를 곱해 도급금액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 구조였기 때문이다. 특히 2019년 역무원의 경우 기본급에 해당하는 위탁계약금액이 최저임금에도 미달했다.

하지만 철도공사 노사가 2019년 11월 ‘노사 및 전문가 중앙협의기구’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재정 상황이 개선됐다. 코레일넥트웍스 노동자는 철도공사 교섭대표노조인 철도노조 소속이다. 당시 노사합의서에는 “2020년 기본급 단가는 합의서 서명 시점에 공표된 시중노임단가에 해당 연도의 정부 임금인상률을 곱해 산정한다”고 합의했다. 서재유 부지부장은 “코레일네트웍스에 연속적으로 적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노조가 불공정계약에 맞서 싸웠고, 합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철도노동자 사례는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의 모범사례로도 언급됐다.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2020년 3월 펴낸 ‘공공기관 자회사 운영 개선대책’을 보면“(철도공사는) 노사전문가 협의회에서 공사와 동일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자회사 위탁업무의 경우 2020년 위탁비 설계시 시중노임단가 100% 반영하기로 결정(했다)”이라며 “예정가격 결정을 위한 노임단가 산정시 정당한 사유 없이 시중 노임단가보다 낮게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권장한다”고 적었다. 노조 투쟁이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 재정상황을 개선시킨 셈이다.

하청노동자 파업시 임금 일부 보장
합의 목적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보장”

강귀섭 전 대표와 서재유 전 지부장이 2020년 7월24일 파업시 평균임금 70% 지급을 합의한 배경은 회의록에도 상세히 나온다.

강 전 대표는 2019년 전년도 시중노임단가 100% 지급 약속을 이끈 노조활동에 “자회사가 바뀌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공감했다.

노측은 철도공사가 일상적인 감사를 진행하고 말 잘 듣는 이사를 연임시키며 자회사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회사 사정을 개선하려면 자회사 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전 대표는 이를 받아들였다. 자회사가 원청과 독립돼 제대로 된 회사로 역할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합의서에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 보장”을 명시한 배경이다.

이후 노조는 2020년 11월11일부터 이듬해 1월5일까지 66일간 파업에 돌입했다. 시중노임단가 100%를 적용해 받은 도급액(처우개선비)를 임금인상에 사용하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2019년 11월 체결한 노사전문가 협의체 합의 내용을 지키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다. 하지만 66일간 파업 끝에도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당시 기재부 예산편성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 임금인상률은 4.3% 이상이 안 되도록 했다는 이유에서 회사가 약속 이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서재유 부지부장은 “기재부 예산편성지침을 이유로 지급하지 않고 결국 철도공사가 배당금 등으로 다시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노사 자율합의가 배임? “노동 3권 침해”
“회사에 불리한 단협은 체결 못하게 될 우려”

노사 대표가 만나 자율적으로 논의하고 합의를 체결한 결과를 배임 행위와 같은 불법행위로 모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덕현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파업 기간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원칙인 것이지, 파업 기간 중 임금 내지 임금 상당액을 지급한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다”며 “헌법상 노동 3권이 있고 노동 3권의 행사 산물이 노사합의서인데 그 자체를 배임으로 본 것은 노동 3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코레일네트웍스는) 해당 노사합의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강 전 대표이사와 철도노조 전 위원장, 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전 지부장을 사문서 위조 및 행사라고 고소했는데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며 “이것만 봐도 회사가 상당히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는 “대표가 노조에게 유리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배임이 된다면, 단협을 체결해 줄 사업주가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며 “건설노조 사건이나 다른 노조파괴 공작처럼 집단적 노사관계를 부정하고자 의지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회사에 불리한 단협은 절대 성립 못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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