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이 ‘주 69시간’ 논란만 남기고 17일 종료했다. 고용노동부는 국민 6천명을 상대로 5~6월 그룹별 심층면접조사(FGI)를 시행해 여론을 반영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여론조사 뒤에도 월·분기·반기·연 단위 근로시간 총량제 관리 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당 일각에서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추진을 보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주 52시간제 시행이 불법·공짜노동 관행 만들어”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1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노동시간 상한 규제가 (실노동시간 단축의) 해결책이 되기 쉽지 않다고 본다”며 “우리 사회 노동시간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담아 내려면 노동자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 양적인 근로시간을 설정해 어기면 엄하고 실효성 있게 제재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허물고 노사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 장관은 주 52시간제를 공짜노동과 불법노동 등 노동시장 관행을 만든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장관은 “현장에 준비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고 3년 3단계에 걸쳐 주 52시간을 도입하고, 특례업종 축소, 관공서 공휴일이 도입됐다”며 “이게 이상한 관행을 만들고 제도 개혁에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 장관은 “이번 의견수렴 과정에서 관행부터 개선하자, 노동시간을 먼저 줄이자는데 같이 가야 한다고 본다”며 “제도·의식·관행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포괄임금 오남용, 장시간 노동 근로감독을 진행해 관행을 개선해 나가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지속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근로감독 강화의 연장선상으로 노동부는 이날 모성보호제도 집중 점검 및 신고센터 운영을 발표했다. 19일에는 임금체불 감독·수사를 강화하는 ‘상습체불 근절대책’을 발표한다.

정책 혼선 지적에 “대통령실과 조율 강화”

노동부는 당초 6~7월 국회에 입법안을 제출하려 했지만 입법예고안을 재검토하면서 일정차질은 불가피한 상태다.

노동부는 국민 의견수렴을 위한 설문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 장관은 “객관적 의견수렴을 위해 국민 6천명을 대상으로 FGI를 할 것”이라며 “전문기관, 노사 참여를 토대로 국민, 노동자가 (근로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체계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설문조사 문항도 세밀하게 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신뢰가) 매우 중요한 만큼 한국노동연구원부터 서울대 교수, 청년 전문가가 참여해서 조사방식, 문안 등 세밀하게 구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론을 반영해 재검토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9월1일 열릴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철회하는 것은 배제하고 있다. 이 장관은 “(여론조사가) 정부정책에 반영되지만, 정부정책이 여론조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정이 입장 발표한 것처럼 노동자한테 불리한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향후 의견수렴 과정에서 양대 노총을 만날지 주목된다. 이 장관은 양대 노총쪽 의견수렴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에 노사 의견을 준 것이 있었다”며 “경사노위 외에도 주제별로 다양한 사회적 대화 방법이 있고, 노사단체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발표와 대통령 발표가 상반되는 등 정책 혼선을 야기했다는 지적에도 답했다. 이 장관은 “개혁이 쉽지 않고 특히 노동개혁은 정책의 일관성 등 정책의 신뢰가 중요해 정책의 혼선이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당·정, 대통령이 긴밀하게 의견조율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 고용노동부

 

김형동 의원, 보류 또는 원점 재검토 주장

국민의힘은 입법예고 기간 종료 이후라도 의견수렴을 통해 법안을 다듬겠다는 입장이다. 법제처의 2023년도 정부입법계획을 보면 근로시간 개편안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6월 국회로 제출되는데, 그전까지 의견을 듣고 수정하겠다는 뜻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도 바로 발의를 하는 건 아니다. 추가적인 의견수렴을 해서 법안을 조금 더 다듬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조만간 출범할) 노동개혁특위에서 다양한 외부 분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며 안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개혁특위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특위 위원장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내정됐다. 박대수 의원은 국민의힘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같은 당의 환노위 위원인 김형동 의원도 구성에 포함됐다. 박 의원은 “(특위를) 잘 활성화해서 노동자들에게 (정책) 혜택이 잘 갈 수 있게끔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만 근로시간 개편안 관련한 정책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여당 내에서 나왔다. 김형동 의원은 “노동개혁특위에서 충분히 검토한 끝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정책을 운영하고, 부족한 점은 보충해야 한다”며 “선의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강요당한다고 느낀다면 반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제는 (근로시간 개편안 정책보다) 다른 정책을 먼저 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추진이 노동자·국민 반발에 부딪힌 만큼, 원점 재검토 또는 보류하거나 다른 노동정책을 먼저 추진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예슬·임세웅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