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주 69시간’ 노동 논란을 잠재우려 포괄임금제 개선 방안을 고심 중이다. 지난 16일 포괄임금제 개선안을 공개하려 했지만 앞서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자 취소했다. 현재는 포괄·고정 연장근로(OT) 오남용 방지 방안을 검토 중이다. 23일 노동부 관계자는 “모든 것을 열어 놓고 고민하고 신중한 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포괄임금제 개선을 강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법정 임금체계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노동시장에서 유지돼 온 포괄임금제 규제 가능성과 효과에 전문가들은 반신반의한다. 출·퇴근 기록 관리 법제화, 초과노동에 대한 확실한 보상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노사 분규·줄소송 가능성도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등을 임금에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제도다. 노동자는 별도의 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 법적으로 규정된 제도는 아니다. 근로시간 측정의 번거로움과 사용자측의 연장근로수당 비용 부담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만연해 있다. 1974년 법원 판례로 처음 인정됐다. 원칙적으로는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구분이 모호하거나 실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정부가 포괄임금제 개편안을 쉽게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까다로운 문제기 때문이다. 포괄임금제는 통상 연장근로를 전제로 고정OT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지만, 회사가 예상한 연장근로 시간에 미달해도 지급한다. 포괄임금제를 페지하면 고정OT 수당은 소정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으로 봐야 할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연장근로수당으로 보면 고정OT 수당이 규정한 시간보다 연장근로를 적게 한 노동자에게 삭감한 임금을 지급하게 되면 노사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통상임금처럼 줄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번번이 무산된 포괄임금제 개선 시도
여야 모두 법안 통과 가능성 ‘회의적’

이런 탓에 포괄임금제 개선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는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을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전문가 논의, 노사 의견수렴 등을 거쳐 지침의 내용 및 발표 여부와 시기 등을 결정할 계획”이라며 끝내 발표하지 않았다. 공짜노동을 근절하자며 포괄임금제 폐지를 담은 법안은 19·20대 국회에서도 잇따라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도 못하고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국회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우 의원안은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에 가산되는 금액을 구분하지 않고 미리 임금 일정액을 지급하는 내용의 포괄임금 계약을 금지한다. 류 의원안은 포괄임금 계약을 금지하고, 근로시간과 임금 등의 입증책임을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 모두 법안 통과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포괄임금은 법으로 폐지할 게 아니고 현장이 악용하는 관행을 잡아야 한다”며 “부정적인 문제가 있으니 (노동부가)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본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이거라도 하자라고 갑작스럽게 이야기하면 경영계가 가만 안 있을 텐데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포괄임금제 폐지) 관련 (정부)입법안이 국회로 넘어온다면 어떻게 다룰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근로시간 산정 가능하면 없애야”

포괄임금제 폐지 혹은 출·퇴근 기록 관리 강화시 포괄임금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전문가 입장도 나뉜다. 박공식 공인노무사(이팝노동법률사무소)는 “포괄임금제를 전면 무효화 한다면 노동시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텐데, 노동부가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정수당을 빼고 임금을 지급할 것인지, 그럼 줄어든 임금만큼 근로시간을 줄일 것인지, 실제 현장에서 그럴 수 있는지, 노동부가 어떻게 감독을 할 것인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이어 “통상 출·퇴근 근로시간은 출입문에 찍힌 기록이나 전자시스템상 로그인·로그아웃 기록이 남아 관리되는데 그렇지 못하는 기업도 있다”며 “기록관리를 강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강문대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어렵다는 것은 근로시간이 산정에 대한 논란이 생기고, 양 당사자들이 수당을 정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라며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면 대법원 판례처럼 포괄임금을 해선 안 되고, 폐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근로시간 산정이 안 되는 곳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출·퇴근 기록도 근로시간을 측정하고, (초과된 시간에) 수당을 주도록 하는 것이니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강예슬·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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