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토론회. <정기훈 기자>

주 69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토록 한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노동·사회 반발이 커지자 대통령실이 진화에 나섰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재검토 지시에 따라 정부·여당은 의견수렴을 하겠다며 MZ노조를 만났지만 이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적절한 상한 캡 없어 유감”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법예고된 정부안에서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으로 여기고 보완을 지시했다”며 “정부는 추후 MZ 근로자, 노조 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현장의 다양한 의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면서 보완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브리핑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상한제로 운영되던 근로시간을 월·분기·반기·연 단위 총량제로 관리하는 안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권을 보장하는 주 69시간(주 6일 근무 기준) 노동이 가능해진다. 장시간 압축노동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법안 추진 재검토’를 지시하고, 이날 ‘적절한 상한 캡을 씌우라’며 구체적 시그널을 준 것이다.

의견수렴 나선 정부·여당
MZ노조 “연장근로 늘리기 안 돼”

정부·여당 모두 일사불란하게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 포괄임금약정 대신 실근로시간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거나 유연근무를 활성화하는 IT기업(와디즈·데브시스터즈·자란다)과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노동부 2030자문단을 잇따라 만나 여론을 수렴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도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토론회’를 열고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의장 유준환)를 포함한 청년·사용자·전문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연장근로를 전제로 한 총량제 관리 방식이 큰 틀에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여론의 동의를 얻기 쉽지 않아 보인다.

유준환 의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주 52시간 초과 주장은 적어도 노동자쪽의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며 “주 52시간 상한 때문에 공짜야근과 장시간 근로에도 임금을 못 받는 공짜근로가 생긴다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공짜야근 문제”라고 분명히 했다. 그는 “저를 포함해 많은 노동자들이 공감하지만 소정근로 (이내) 기준으로 유연화를 떠올리지, 연장근로를 바탕으로 떠올리지 않는다”며 “이번주에 20시간 일하고, 다음주에 50시간 일해야지 생각하는 사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이자 의원은 비공개로 진행된 토론회 후 기자들과 만나 “주 69시간이라는 프레이밍에 빠지다 보니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면서도 “대통령의 60시간도 과도하다는 말씀, MZ 노조나 노동계에서 하는 얘기를 잘 경청해서 보완해 만들어 내겠다”고 전했다.

전문가 “정책기조 바꾸기 어려울 것”
상한 줄여도 과로 논란은 여전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안을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기조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1호 노동개혁 정책인데, 다른 노동개혁이 무색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폐지하고 월·분기·반기·연 단위 총량제 관리 기조를 유지하되, 장시간 노동 논란을 피할 상한을 재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발언대로 주 60시간 미만으로 주간 노동 상한을 정한다고 해도 ‘과로’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노동자 건강이 아니라 시간의 총량을 중심으로 논의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길고 짧음을 떠나서 시간만 고려해 버리면 연령이 많거나, 기초질환이 있거나, 건강하지 않은 노동자거나, 혹은 건강하더라도 교대근무나 야간노동을 한다거나 다른 요인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며 “여기에 총량까지 늘리는 방식으로 논의되면 애초 과로 산재에 취약했던 분들이 더욱 취약해진다”고 꼬집었다. 박 변호사는 “결국 정부는 집중근무가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인데, 일을 몰아서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업무부담 가중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 논의로 결정한 근로시간 개편 … 예견된 갈등

이번 논란은 예견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계택 선임연구위원은 “노·사·정 논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하지 않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지 역으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중요한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 삶과 직결되는 근로시간 제도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설득 없이 전문가 간 논의로 결론 낸 탓에 혼선을 빚게 됐다는 비판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전문가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통해 노동시간 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근로시간 개편이 노사합의를 전제로 하는 점을 강조하지만 노조 조직률이 14%에 불과한 상황에서 노동자 자율 동의로 연장근로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이는 드물다. 또 ‘실근로시간을 단축하고 공정한 보상 관행을 확립’하려면 공짜야근과 포괄임금제가 만연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정부가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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