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배노조와 배달플랫폼노조는 17일 오후 공청회가 열리기 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업계에는 각종 규제완화와 지원책을 주고, 택배·배달 노동자들에게는 대체배송 허용, 겸업 허용 같은 노동3권 침해와 기존 노동조건 악화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어고은 기자>

택배·배달 같은 생활물류서비스산업 발전 정책의 중장기 로드맵이 될 첫 기본계획 초안이 공개됐다. 관련 규제 혁신과 인프라 구축뿐만 아니라 종사자들의 노동조건 개선도 중점 추진 과제에 포함됐다. 그런데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체배송 허용’, 인력난 해소를 위한 ‘외국인 노동자 고용확대’ 같은 내용이 언급돼 노조는 노동조건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1차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 기본계획(2022~2026)’ 공청회를 열고 기본계획 초안을 공개했다. 기본계획은 지난해 7월 시행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서비스법) 20조에 따라 이번에 처음 마련되는 것이다.

전속성 없애고 외국인력 확대 추진
“사용자 책임 약화, 질 낮은 일자리 고착화 우려”

국토부의 연구용역을 수행한 한국교통연구원은 지난 5월부터 인프라·기술·친환경·생활물류산업·종사자·소비자 6개 분야별로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 의견수렴을 거쳐 기본계획(안)을 마련했다. 기본계획의 비전을 ‘과감한 혁신과 도전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생활물류서비스 구현’으로 세우고 △모빌리티 대전환을 위한 생활물류 규제 혁신 △생활물류산업의 첨단화 촉진 △지속가능한 생활물류 인프라 공급 확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근로여건 조성 △소비자 보호 강화를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그런데 인력난 해소를 위한 규제완화로 전속성 완화와 외국인력 확대가 포함됐다. 현재 택배노동자는 대체로 하나의 택배회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일한다. CJ대한통운 대리점과 계약하면 CJ대한통운 물량만 배송하고 다른 택배사 물량을 배송한 사실이 적발되면 계약이 해지되는 식이다. 기본계획 초안에는 물량이 적은 지역부터 “복수 택배사의 배송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또한 방문취업(H-2) 자격 외국인의 취업 허용범위 확대도 추진한다. 현재 상·하차 등 하역 및 적재 업무만 취업이 허용되는데 직종을 확대하고 허용인원도 늘리는 등 확대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국택배노조는 이 같은 정책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약화하고 상·하차 업무를 질 낮은 일자리로 고착화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했다. 택배노조는 2017년 11월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합법노조로 인정받았지만 노동조건 결정권을 쥔 원청과는 교섭테이블에 마주 앉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원청 사용자로서 택배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판정했지만 원청의 행정소송 제기로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기본계획 초안대로 복수 택배사와 일하게 될 경우 ‘사용자 찾기’가 더 어려워져 특수고용직의 노조할 권리는 더욱 요원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확대 또한 인력난의 근본 원인은 저임금·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비롯된 만큼 외국인을 ‘나쁜 일자리’로 내몰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체배송 허용 근거를 생활물류서비스법에 포함하겠다고 한 점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계획 초안에는 “화주·소비자 피해 최소화 및 원활한 택배서비스 제공을 위해 대체배송 허용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를 금지한 노조법 43조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합법적 대체배송이 가능하다는 점을 생활물류서비스법에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노조는 현재 택배현장에서 노조법 43조에 따라 대체배송이 실시되고 있는데 굳이 생활물류서비스법에 같은 내용을 명시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대체배송 범위를 확대하는 계기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국토부 “소비자 불편 해소 위해 대체배송 추진 필요”

대체배송이나 외국인 노동자 고용확대 등을 두고 패널토론에서 노사 간 이견이 드러났다. 남재현 CJ대한통운 상무는 “택배업이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서비스로 자리 잡은 만큼 노동자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도 중요하다”며 “태풍이 왔을 때 노조에서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해 전체 활동 중단을 제안했는데 종사자 판단에 의해 중단되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체배송 관련해서도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한다고 하면 반대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배명순 한국통합물류협회 실장은 “외국인력이 허브터미널·서브터미널 상·하차 작업을 하는데 인력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며 “지난해 업종을 확대해서 시행한다고 했는데 아직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되지 않았다.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조가 제기한 문제점에 대해 대부분 추후 논의할 과제로 미뤘다. 이두희 국토부 상황총괄대응과장은 “지난해와 올해 초 파업 사태에서 소비자들이 느낀 불편과 분노가 상당하기 때문에 (대체배송 허용) 추진 필요성도 크다”며 “법률로 규율할 부분이어서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속성 완화와 관련해서는 “복수 등록 요구가 상당하다”며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방법론 문제로 구체적으로 논의가 이뤄질 때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했다.

국토부는 추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기본계획(안)을 수정·보완해 관계부처와 협의, 국가물류정책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올해 안에 기본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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