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현대제철에 이어 현대모비스가 자회사를 설립해 하청업체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분 100%를 출자해 11월 중 모듈통합계열사와 부품통합계열사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두 신규 자회사와 기존 생산전문자회사 에이치그린파워(HGP)는 13개 하청업체가 흩어져 수행하던 업무를 흡수하고,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고용이 승계된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취하와 부제소 합의가 전제조건이다. 22일 <매일노동뉴스>가 현대모비스가 통합운영안을 꺼내든 배경을 살폈다.

“부제소 합의하고 소 취하하면
1천250만원 지급”

현대모비스가 내세운 통합운영의 배경은 ‘미래 모빌리티 패러다임 대응’이다. 미래차 전환 과정에서 기술력 확보가 중요해지는데 사내하청업체로 흩어져 있던 제조 기술력을 내재화하고 품질역량을 강화해 글로벌 최고 수준 제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울산과 화성, 광주 등지의 모듈공장 생산조직은 모듈통합계열사로, 에어백·램프·제동·조향·전동화 등 핵심 부품공장 생산조직은 부품통합계열사로 전환된다. 9월 임시이사회를 거쳐 신규법인 설립 안건을 승인한 뒤, 11월 중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결정대로 진행되면 현대모비스 13개 하청업체는 사라지고 기존 생산전문 자회사 3곳(지아이티·현대아이에이치엘·HGP)을 포함해 5개 생산전문 자회사 체제가 된다. 하청업체 노동자 8천200여명은 자회사로 전환된다.

자회사 전환시 전반적인 노동자 처우는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신규입사로 근속은 인정되지 않는다. 현대모비스가 지난 18일 노동자들에게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자회사에서는 하청업체 때보다 호봉구간별 상승분이 15원에서 30원으로 50% 인상된다. 1년에 60원 오르는 셈이다. 현대모비스의 호봉구간(1년에 120원)의 절반 수준으로 격차는 유지된다. 근속수당 명목의 수당을 지급하고, 학자금 지원 금액, 복지포인트 등 각종 수당이 오르지만 신규입사로 처리돼 근속연수에 따라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1년차 기준으로 적용된다.

단 자회사 신규입사를 위해서는 부제소 합의가 필수다. 회사는 부제소 동의서 제출 인원에 한해 입사 이후 800만원을 지급한다. 이미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고 입사하는 경우 45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불법파견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대모비스 충주공장 노동자 450여명은 현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020년 3월 소송을 제기한 1차 소송단(243명)은 9월 말 5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노조는 조만간 1심 판결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대제철 자회사 갈등 재현되나

자회사 설립을 두고 노동자 의견은 엇갈린다. 현대모비스 하청업체 노사와 현대모비스가 함께하는 미래차위원회에서 통합운영을 요구해 온 금속노조 현대모비스 8개 지회(화성·광주·울산·울산모비스지회·평택·김천·안양·충주지회)는 회사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현대모비스 아산·천안지회와 현대모비스 충주노조는 회사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모비스아산·천안지회 쟁의대책위원회는 이날 현대모비스에 “제조생산공장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며 “이미 실패한 현대제철 자회사 꼼수를 답습하지 마라”고 요구했다. 이어 “현대모비스 자회사 계획은 제조생산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하고 연구개발(R&D), AS물류 등 집중으로 요약된다”며 “현대모비스가 제조공장 운영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주도한 현대모비스 충주노조는 “한국노총 전 조합원은 자회사로 전직은 거부하지 않으며, 단 소 취하와 부제소 합의서는 작성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내부지침을 정한 상태다. 충주노조 관계자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뒤 여러 가지 탄압을 받으며 버텼다”며 “소송을 이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안에서 의견이 갈리면서 현대제철이 지난해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며 발생했던 진통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당진·인천·포항 사업장별 계열사를 설립해 사내하청 노동자 7천여명을 채용하기로 결정했고 이 과정에서 자회사안 찬반을 두고 노동자들이 갈등을 겪었다. 소 취하에 합의하지 않은 2천100여명의 노동자는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남아 있다.

“불법 문제 장기화 풀 해법”
“부제소 전제 자회사안 합의는 문제”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불법파견 소송은 지난한 길이다 보니, (현대모비스)지회 입장에서도 그게 과연 최선의 길인지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며 “회사 입장에서도 법적 리스크가 없어지는 것이니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준현 노조 광주전남지부 교육위원장은 개인의견을 전제로 “자회사 자체로 통합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공동교섭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자회사가 하나여야 한다”며 “부제소 동의서를 전제한 것은 현대모비스에 실질적인 사업주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법적 다짐으로 문제”라고 비판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대모비스가 자회사를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그 성장분을 자회사와 공평하게 나누고 자회사 노동자도 성장분을 요구할 교섭의 공간이 열린다면 이 모델은 박수를 받을 여지가 있다”며 “하지만 또 다른 인력도급의 위장된 형태로 빠지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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