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내연기관 차량의 일거리 감소로 고용불안 해소를 위한 먹잇감 찾기에 나선 것.”

지난달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울산현대모비스 PE(Power Electronics)모듈 생산라인을 실사 방문한 것과 관련해 같은 금속노조 소속인 울산현대모비스지회가 공장 내 대자보를 통해 비판한 내용이다. 현대차지부가 “오해”라고 해명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이번 사건은 전기차 생산과 관련해 물량을 둘러싼 원청과 계열사 간 긴장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것이 업계·전문가 분석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이 적고 공정도 단순해 인력이 덜 필요하다. “물량이 곧 고용”인 자동차산업 특성상 각 기업이나 노조 입장에선 전기차 전환에 따른 고용불안에 대비해 최대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과제로 놓일 수밖에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생산 확대를 앞두고 앞으로도 물량 문제를 둘러싼 노·노간, 사·사간, 노·사간 신경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같은 완성차업체 계열사들이 완성차업체로부터 전기차 관련 새로운 아이템(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단가 경쟁을 벌이는 등 암투가 치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지부가 올해 임금협상 별도 요구안에 전기차 PE모듈엔진(모터·감속기·인버터) 생산을 담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기아차지부도 올해 임단협에서 전기·수소차 생산 관련 핵심부품 공장 신설을 요구했다. 현재 현대차·기아차 생산 방식은 완성차업체가 모듈 업무를 계열사에 외주화하고, 계열사는 부품 생산을 하청업체들에 외주화하는 구조로 수직계열화돼 있다. 전기차 생산에 따라 일감이 줄어들 것을 고려해 기존에 계열사·하청에 외주화한 업무를 일부 원청으로 가져오자는 것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기존 계열사·하청의 업무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전기차 생산 확대에 따라 늘어나는 전자부품 관련 업무를 원청에 일정 정도 분배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현대차지부 관계자도 “자의적으로 우리 이득만 취할 수 없고 부품사들을 무너뜨리면서 갈 수도 없다”며 “모듈 관련한 요구안을 (실제) 어떻게 만들지는 논의를 해 볼 것이고, 교섭 요구안엔 부품사들에 대한 요구안도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생산시 부품업체 28% 감소 영향
전기차 전환 속도 못 따라가는 부품사/b>


문제는 생존 위기가 완성차업체와 계열사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기차 생산에 따른 부품·공정 축소는 산업구조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하청노동자들부터 덮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2030년 전 차종에서 친환경차를 출시해 국내 신차 비중을 33%로, 세계시장 점유율을 1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가 담긴 ‘2030 미래차 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부품기업 중 전장부품 기업 비중을 올해 4%에서 2030년 20%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2025년 전기차를 100만대 판매하고, 시장 점유율 10% 이상을 기록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산업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무게중심을 이동하면 부품의 축소·변화가 불가피하다. 연료 저장 공간으로 사용되던 연료탱크, 엔진의 열을 식혀줄 냉각수·라디에이터 그릴 같은 부품들이 필요없게 된다. 2018년 일본 자동차부품공업협회 발표에 따르면 전기차로 전환하면 내연기관 부품 3만개 중 1만1천개가 사라진다. <본지 7월17일 4면 ‘전기차 생산에 따른 노동시장 재편, 고용안정 방안 불확실’ 참조>

IBK경제연구소의 2018년 보고서 ‘한국 자동차부품산업의 경쟁력분석과 대응 방안’에 따르면 일본 자동차부품공급업체 추정 기준을 국내 자동차 부품기업에 적용하면 1만여개의 부품업체들 중 28%에 해당하는 2천896개의 부품업체가 감소군 범위에 들어간다.<표> 대신 배터리·모터를 비롯한 전장부품 관련 산업 규모는 확대된다.


그런데 부품업체들의 대응이 정부나 원청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품사들은 현대차(의 계획)에 쫓아가게 돼 있는데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현대차가 (전기차 전환 관련 계획을) 뚜렷하게 발표하지 않았다”며 “그때까지 내연기관차에 집중하다가 지난해 5월 현대차가 노사 세미나를 하면서 전기차를 하기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부품사들이 우왕좌왕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품사들이 고민을 하던 중 코로나19가 터져서 지금은 전기차고 뭐고 (경기 악화로) 생사기로에 놓인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불안, 하청노동자부터 덮치나

노동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나마 일부 1차 하청업체가 전기차 부품 생산을 준비하고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 업체들은 전환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다. 하청업체가 전기차 부품 생산 업체로 전환하더라도 기존 노동자들이 새로운 부품 생산인력으로 흡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하청업체 중에도 규모가 좀 있고 노동자들이 고령화하고 있는 곳은 퇴직자 자연감소분으로 버틸 만한데 전혀 버틸 수 없는 업체도 많다”며 “지금 진행 속도로는 매출이 10%만 떨어져도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이 있는 만큼, 전기차 생산이 조금만 더 많아져도 버티기 힘든 기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림 금속노조 정책국장도 “최근 한국GM을 비롯한 구조조정, 수출 부진, 수입차 비중 증가와 내수시장 정체 등으로 자동차산업이 전반적으로 침체하고 있다”며 “부품사 고용감소가 반드시 전기차 확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전기차가 부품사 침체를 더 크게 촉발할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원청업체와 총고용 보장을 요구할 협의 틀조차 없어 고용불안이 더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현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장은 “현대차지부와 달리 지회는 원청과 교섭할 수조차 없다”며 “전기차 생산에 따라 일부 부품이 필요없어지면 하청 노동자들은 쫓겨나고 말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대차지부는 올해 초 고용안정위원회 산하에 ‘4차 산업 미래 변화 대응 TFT’를 만들어 미래차 산업변화에 따른 고용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 부품사 사업재편 지원하지만 극소수
“이제 시작 단계, 서비스업 시장 확대 기대” 


정부가 하청업체 생존 대책에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30 미래차 산업 발전 전략’의 후속 조치로 올해 5월 부품기업의 미래차 사업 전환을 위한 사업화 컨설팅, 시제품 제작, 평가·인증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은 70개 내외의 중소·중견 자동차 부품기업이다. 지원 금액은 기업당 7천만원 내외다. 6월에는 금융·세제를 지원할 10개 기업에 대한 사업재편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 이 중 내연기관차에서 수소·전기차로의 전환을 주제로 승인받은 기업은 6개사다. 정부는 또 기술·금융·수출지원기관으로 구성된 ‘부품기업 사업재편 지원단’을 가동해 미래차 전환에 필요한 기술·자금·시장개척 등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지원받는 업체는 일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완성차업체 1차 하청업체가 870개 정도이고 2~3차 하청업체 수는 훨씬 더 많은데 지원 대상이 올해 70개면 매우 적은 수라는 지적이다. 반면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도 이제 지원 계획을 시작하는 단계”라며 “향후 세부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 또는 자율주행차 생산에 따른 서비스업 시장이 엄청 커져서 오히려 인력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전장부품업체로 전환되지 못하는 나머지 업체 노동자들은 그쪽으로 고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속도 조절, 노동자 재교육해야”
노사정 대화채널 활성화 요구도 나와


하청노동자 생존을 위해 노동자 재교육 필요성도 제기됐다. 하청업체의 전장부품 생산 노동자로 전환되거나 또는 하청업체 폐업으로 다른 직종으로 업종 변경을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전문가·업계 관계자들은 “노조나 회사, 또는 노동부·교육부를 포함한 정부가 이를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전기차 전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준영 사무처장은 “친환경차로 가려면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 부분도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인 만큼 전기차 전환 속도가 정부 계획처럼 빨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며 “너무 급격히 진행됐을 때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산업 하청업체 생존과 관련한 노사정 대화 채널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구성된 자동차산업노사정포럼에서는 노·사·정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국내 완성차 업체를 회원으로 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뿐 아니라 자동차부품업계의 이익을 우선하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도 참여한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자동차업계 노사관계 주체자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아직 전기차를 구체적인 의제로 다루진 않았다”며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보고 다룰 의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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