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택시업계의 ‘변형 사납금제’에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에 사납금제를 금지한 조항은 ‘강행규정’이라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근로계약에서 기준운송수입금을 정해 부족액을 공제하는 것은 여객자동차법 조항에 위반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편법으로 사납금제를 시행하는 택시업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기준수입금 못 미치자 급여는 ‘제로’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11일 광주의 한 택시업체 소속 택시기사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사측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납금제’는 택시기사가 수입 중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내고 나머지 수입금(초과운송수입금)을 가져가도록 한 제도로, 2019년 여객자동차법이 개정되면서 금지됐다. 사납금제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운송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월급제로 임금을 받는 ‘전액관리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납금제를 시행하면서 운송수입금 부족액을 고정급에서 제하고 지급하는 택시회사가 존재했다. 월급제를 정착할 목적으로 시행된 ‘전액관리제’에도 불구하고 기존 사납금제가 변형돼 실시된 것이다.

A씨 사건도 비슷했다. 회사는 2019년 8월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A씨의 일급 산정을 위한 기준수입금을 정했다. 월 390여만원을 초과한 수입금은 A씨가 가져가도록 했다. 그러면서 기준수입금에 미달한 금액은 초과운송수입금에서 공제한다고 합의했다.

기준수입금은 광주지역택시노조가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기준으로 책정했다. 단협에는 ‘월 운송수입금을 정액 입금시켰을 때는 성실 근무한 것으로 간주해 미입금시 급여에서 공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근거로 A씨는 월 기준수입금을 393만원으로 하는 임금협정서를 작성했다. 1인 2교대가 원칙이지만, 1인 1차로 운행하면 기준수입금을 480만원으로 올렸다. 또 만근을 전제로 월 급여는 175만원을 받기로 정했다.

그런데 수입금 부족액을 공제하기로 정하면서 실제 A씨가 손에 쥔 급여는 적었다. 회사가 기준수입금과 실제 A씨가 낸 수입금의 차액을 토대로 월급을 지급한 것이다. A씨는 2020년 1월1일 1대 차로 22일 운행했다. A씨는 기준수입금(422만원)보다 적은 289만원을 냈는데, 회사는 차액(133만원)을 1월 급여(157만원)에서 제했다. 24만원만 월급 통장에 들어왔다.

2월 근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A씨는 1일 1차로 24일 근무했고, 이를 기초로 산정한 기준수입금은 460만원인데, 실제로 회사에 지급한 수입금은 217만원이었다. 회사는 차액 243만원을 월급(186만원)에서 차감했다. 그 결과 A씨가 받은 급여는 ‘0’이 됐다. 그러자 A씨는 2020년 5월 미지급 급여와 지연손해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법원 “여객자동차법 입법 목적 고려해야

쟁점은 급여에서 ‘수입금 부족액’을 공제한 것이 유효한지였다. 사측은 근로계약서에 체결했으므로 미지급 임금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측은 임금협정 자체가 무효라고 반박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소정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해 약정한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월 손익분기점 매출액’을 미납한 것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여객자동차법에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여객자동차법은 일정금액의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납금 미납을 이유로 출근을 정지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의 지난해 10월 판결을 근거로 제시했다.

1·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계약 중 기준수입금을 정해 부족액 공제를 정한 부분은 강행규정인 여객자동차법 조항에 위반돼 무효라고 봤다. 재판부는 “택시기사가 승객의 수요를 찾아 대기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경영상 위험으로서, 사업자가 기사에게 경영위험을 그대로 전가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며 “수입금 부족액의 공제가 허용되면 사납금제 시행과 관계없이 경영위험의 전가를 낳게 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수입금 부족액 공제는 입법취지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여객자동차법 신설 조항에 나타난 입법자의 의사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공제함으로써 근로자의 경제생활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려는 근로기준법(43조1항)의 해석에도 고려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택시기사의 근무해태 등으로 수입금 부족액이 생기더라도 별도의 징계로 제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 A씨가 수입금 공제에 동의했다고 사측이 제시한 증거도 임금 수령을 확인한 서명에 불과하다며 배척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갈등 지속, 택시노동자 “기준수입금 과도”

이번 판결은 횡행하는 변형된 사납금제와 관련된 사실상 첫 법적 판단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A씨를 대리한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여객자동차법 취지에 따른 판결로서 택시 사업주들의 사납금제 운영을 방지하고, 택시노동자들이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택시업계의 사납금 갈등은 반복되고 있다. 택시기사들이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소정근로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운행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전액관리제 시행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돼 왔다. 대법원이 2019년 4월 최저임금법을 회피할 의도로 실제 운행시간이나 근무형태의 변경 없이 소정근로시간만을 단축하기로 한 노사합의는 무효라고 판결하며 갈등은 격화했다.

택시기사들의 줄소송이 이어지며 택시회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부산지역 96개 택시회사 대표들로 구성된 부산광역시택시운송사업조합은 지난 11일 부산고법 앞에서 단체협약을 법원이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는 최저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운영경비의 재원인 사납금을 인상하고자 노조와 교섭을 했지만, 노조는 사납금 인상은 전체 근로자들이 반대하고 있어 소정근로시간을 조금씩 줄이자고 제안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택시노동자들은 사측이 기준수입금을 인상해 위기를 자초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는 택시 사업주들의 기자회견 이후 성명을 내고 “과도한 사납금과 변형된 사납금제인 기준수입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택시기사들이 현장을 떠난다”며 “택시 사업주들은 코로나19로 승객이 감소해도 사납금과 기준수입금을 인상했다. 최근 연료비 인상으로 또다시 기준수입금이 인상됐고, 택시요금 인상이 있을 때마다 매출이 증가했다며 또 사납금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지속되는 한 택시 대란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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