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서울신용보증재단 고객센터 상담사 A(41)씨는 지난달 초 한 고객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다. “욕을 하지 말아 달라”는 두 차례의 경고에도 고객의 폭언은 계속됐다. A씨는 결국 통화를 강제종료해야 했다. 이후 팀장 지시에 따라 30분간 휴식을 취했지만 다시 전화를 받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통도 지속됐다. A씨는 병원에 가기 위해 오후에 조퇴를 하고 심리상담과 약 처방을 받았다. 그런데 다음날 A씨는 센터장에게서 당일 조퇴는 무급처리된다고 통보받았다. A씨가 폭언을 듣기 불과 3일 전에도 해당 고객은 다른 상담사에게 욕설을 한 일이 있었다. A씨는 법적 조치를 포함한 재발방지를 요청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지 5년째이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감정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에 명시된 업무중단에 따른 휴게시간과 병원진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면 유급휴가가 뒷받침돼야 하고,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인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폭언 발생시 치료 지원 ‘사업주 의무’인데
노동부까지 “유급 처리 법적 근거 없다”

7일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지부장 김민정)에 따르면 A씨 사건 이후 고객응대 매뉴얼이 폭언 발생시 기존 2차례 경고 이후 상담을 종료하던 것에서 전력이 있는 고객이 일주일 이내 재인입됐을 때 1차 경고 이후 바로 종결할 수 있도록 변경된 게 전부다. 김민정 지부장은 “프로세스가 바뀌었지만 욕설이 발생했을 때 바로 전화를 종료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상담사들에게 변화가 크게 와닿는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상담사들은 A씨에게 욕설을 한 고객과 통화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A씨에 대한 유급휴가 보장이나 고객 차단 혹은 고소·고발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고객센터 용역업체와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유급휴가 보장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용역업체인 ㈜한국코퍼레이션측은 희망연대본부에 공문을 보내 “휴식시간을 제공했고 추가 휴게시간을 부여했다. 1일 유급휴가는 어렵다”며 “상담사가 원할 경우 당사와 계약한 곳에서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단도 본부에 “무급 조퇴처리에 대해서는 재단이 관여할 수 없는 한국코퍼레이션 경영권에 관한 내용”이라고만 답했다.

산업안전보건법 41조2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업무와 관련해 제3자의 폭언 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같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시행령에 명시된 필요한 조치는 △휴게시간 연장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고소·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에 필요한 지원이다. 사업주가 41조2항을 지키지 않았을 때 5천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부는 본부의 무급조퇴 처리 관련 질의에 “유급처리는 법에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에 따른 휴게시간과 건강장해 관련 치료에 따른 병가를 유급으로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업무 배제와 심리상담은 사업주가 제공해야 하는 의무고 지키지 않았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도 있다”며 “의무사항이면 업무에서 분리하고, 휴식을 취하고, 심리상담을 받는 시간 전체가 유급이어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는 해석 자체를 하지 않고 유보해 버린 것으로 사실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서울교통공사 고객센터 원청 고발 전례 있어

감정노동자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재발방지 대책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신용보증재단고객센터지부는 수 차례 폭언을 한 고객에 대해 법적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용역업체측은 고발 주체가 당사자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희철 본부 조직국장은 “고발주체가 피해자가 되면 악성고객이 법원에 열람신청 등을 통해 신분이 드러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한 보복 우려 또한 있다”고 지적했다.

고객응대 매뉴얼상에도 반복적인 폭언 발생으로 상담사가 상담을 강제종료하는 데까지가 상담사의 역할이고, 그 다음 단계부터는 용역업체와 재단의 역할이다. 운영팀장·고객센터장이 재단 고객지원팀에 보고 및 관리대장을 기록하면 고객지원팀에서 경고문 발송과 법적 조치를 취하는 식이다. 재단은 본부에 “고객에 대한 고발 여부도 용역사 방침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럼에도 형사고발 가능 여부에 대한 법률 질의를 했고 신중히 검토한 뒤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답변한 상태다.

원청이 고객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한 전례는 이미 있다. 서울교통공사 고객센터에 6개월간 전화·문자로 폭언을 한 악성 민원인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2018년 7월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소했다. 대법원은 2020년 민원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시 120다산콜센터도 마찬가지다. 서울시는 폭언·성희롱 등을 반복하는 악성민원인에 대한 특별관리 전담반을 구성하고 구두경고에도 효과가 없을 때 고소·고발조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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