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

공교롭게도 조선업 관련 연구를 2016년 시작해 매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 파업이 눈에 밟힌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파업을 두고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언론은 파업이 언제 끝날지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업이 일어난 배경과 임기응변식 봉합이 아닌 근본 대책이다. 지난 5년 동안 매번 들여다본 조선업의 가려진 실태를 <매일노동뉴스>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조선업에 비정규직이 많은 까닭

우리나라 조선업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기간산업 중 하나다. 조선업 자체만이 아니라 전·후방 고용효과가 큰 효자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2016년 조선업의 위기에도 정부는 다양한 지원을 통해 조선업 회생을 지원했다. 국민의 바람대로 조선업은 2020년 중국에 뺏긴 세계 1위 자리를 다시 찾아왔다. 어려움을 이겨낸 국민적 자부심도 컸다.

그런데 조선업은 지속가능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기형적인 고용구조로 노사 모두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는 점이다. 조선업에 고용된 인원은 현재 약 10만여명이지만 이 중 약 70%가 사내하청 노동자이거나 재하청 형태의 물량팀 노동자들이다. 용접·도장·비계(발판) 등 배를 만드는 작업 대부분이 사내하청 노동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신분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인데다 다단계 하도급 업체가 2차나 3차, 심지어 4차까지 있는 점이다.

이처럼 조선업에 비정규직이 많아진 이유는 수요에 따른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조선업은 경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배를 짓는 동안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경제불황 등으로 물동량이 줄어들면 인원을 대폭 줄여야 한다. 사내하청 방식의 비정규직이 존재해 온 이유다. 그런데 조선업종 기업들은 1990년대부터 2015년까지 호황기에 늘어난 인원의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사내협력회사 이외에도 물량팀이라는 소규모의 다단계 업체까지 대거 활용하게 됐다.

비정규직 남용의 부메랑
산업 경쟁력 저하와 산재사고

조선업의 비정규직 남용은 곧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2016년 이후 불황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되자 비정규직을 대거 해고했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13만명에서 5만7천여명으로 7만명 이상 줄었다. 6만명이었던 정규직도 1만5천여명이 회사를 떠나면서 4만5천명으로 감소했다. 2019년 이후 다시 조선업에 호황이 찾아왔고 2020년 수주량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배를 짓는, 생산을 해야 할 사내하청 노동자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위험하고 힘든 일에 비해 보수가 적고 고용이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건설업 용접이나 도장업무의 시간당 보수는 2만3천~2만5천원 수준이지만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시급은 1만1천~1만3천원에 불과했다. 2016~2018년 조선업에서 건설·플랜트업으로 옮긴 노동자들이 조선업으로 돌아오지 않게 됐다.

숙련노동자 부족은 곧 품질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선박이 중국업체의 배에 비해 비싸면서도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품질과 성능 등 차별화된 기술력 때문이었다. 품질 저하는 곧 경쟁력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최근 정부가 외국인력을 대거 조선업에 허용하면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숙련된 인력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조선업계에서 비정규직을 남용한 대가는 안전관리 취약으로도 나타났다. 원청 회사가 안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사고는 정규직보다 사내하청 노동자나 일을 갓 시작한 비정규 노동자에게 일어난다. 규모가 영세한 사내하청 회사나 물량팀은 안전관리가 취약하다. 결국은 개별 노동자가 스스로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고, 이러한 환경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아졌다. 조선소의 중대재해는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도 관련 있다. 죽고 다치는 사업장에서 일하려는 노동자는 없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비정규직 남용은 기업의 경쟁력 저하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도 위협한다. 비정규직인 사내하청 노동자는 고용불안 외에도 저임금과 임금체불에 시달린다. 몇 년 전 사내하청 비정규직 1천9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임금체불을 경험한 비율이 29%였으며 체당금을 신청해서 받은 비율도 39%나 됐다. 이는 조선소에 다양한 노동시장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리기능직 업무를 하는 정규직도 있고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도 있다. 일용직처럼 주어진 물량을 특정 기일 안에 마무리하는 물량팀이 다단계로 존재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월급도 적고 더 위험한 일을 하며 부당한 일을 당하는 구조다.

대우조선 사태, 미봉책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헌법은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가 이를 행사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해당 협력업체가 원청으로부터 물량을 받지 못해 자연스럽게 해고되는 구조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교섭하더라도 영세한 협력업체가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을 위한 재원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아 교섭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결국 원청이 나서야 하지만 조선업에 공동교섭이나 공동노사협의회는 제도화돼 있지 않다. 사내하청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보장받기란 매우 어려운 구조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업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고 때론 암울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동화가 불가능한 조선업의 특성상 숙련된 노동자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차별적인 고용구조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제안들이 있었다.

첫째,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면 최소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금지해야 한다. 둘째, 지금의 사내협력회사의 규모를 확대해 건설업의 전문건설업체처럼 숙련을 축적할 수 있는 구조로 양성해야 한다. 셋째,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협력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규직 전환이 어렵더라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조선업에 매력을 느끼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대우조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조선업에 필요한 것은 파업을 하루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경찰력을 투입하거나 노노갈등을 앞다퉈 보도하는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선업에 내재해 있는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만들어 산업경쟁력과 양질의 일자리를 동시에 유지하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조선업 연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번에 파업을 결심한 이유가 적어도 즉흥적인 분노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구조화돼 있는 차별과 삶을 바꾸고 싶은 절박함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사이 협상이 타결돼 파업이 끝나길 희망하지만, 일회성 임금인상과 형사처벌 면책 등은 미봉책일 수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생산을 전담하는 하청 노동자의 파업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우조선 사내하청 파업에 대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언급하며 장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할 것을 언급했다. 일부 언론은 경찰력 투입이 임박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파업이 마무리되길 기다릴 때가 아니다. 경찰력 투입 등 힘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구태를 보일 때는 더더욱 아니다. 지금은 국가 경제의 먹거리이자 효자산업인 조선업의 고용생태계가 정상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안을 마련할 때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