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51일간 파업은 한국 조선업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하청노동자 희생에 기댄 다단계 하도급구조 유효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을 해결하지 못하면 곧 닥칠 인력난을 해결하기 힘들다. 벙커C유(중유)·LNG 선박에서 친환경·스마트 선박으로 전환하는 산업전환기 장기전망은 더 어둡다. 국내 노동자의 조선소 기피 현상이 숙련 형성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파업이 남긴 과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까. 26일 오전 경남 창원대에서 이와 관련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조선산업 사내하청 문제 진단 및 해법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금속노조와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창원대 사회학과가 주최했다.

“원·하청 교섭구조 없으면 대우조선 사태 반복”

조선·해운 분석업체인 클락슨 리서치 전망에 따르면 올해부터 2031년까지 세계 조선 발주량은 연평균 4천90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로 한국이 수주난을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친환경·스마트 선박으로 넘어가는 산업전환기다. 친환경·스마트 선박을 만들려면 우수인력 확보가 절실한데 현재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는 숙련을 쌓을 틈이 없다. 김태정 노조 정책국장이 “한국 조선업은 더이상 저가 벌크선을 만들어 팔 수 없고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근무환경 개선을 통한 우수인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배경이다.

현실은 암울하다. 노조는 지난 5~6월 8개 조선사 노조가 모인 조선업종노조연대를 상대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8개 조선소 정규직 노동자 1천5명 중 88%가 “조선소 노동자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돌아올 것”이라고 답한 노동자는 1.6%에 불과했다. 청년들이 조선소를 기피하는 이유로는 낮은 임금 수준을 꼽는 이가 47.4%로 가장 많았다. 높은 업무 강도(24.8%), 위험한 작업환경(16.6%)이 뒤를 이었다. 장기 전망이 불투명해서라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산업전망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노동환경이 좋지 않아서 조선소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김태정 정책국장은 “자본의 입장에서 사내협력사의 장점은 인건비 절감과 고용유연성이지만 숙련 형성이 저해되면 낮은 생산성과 산재 위험을 피해 갈 수 없다”며 “원·하청 중층적 고용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법적·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반복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적정임금제 도입하면 기술경쟁 가능”

중층적 고용관계 속 원청과 하청노동자 교섭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노조 현대위아 비정규 노동자로 구성된 현대위아비정규직 3개(광주·안산·창원)지회는 2020년 7월부터 △자회사 방안 철회 △미래 아이템 확보 △고용안정 비전 제시 등을 주제로 원·하청 노사 합동포럼을 운영 중이다.

정준현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교육위원장은 “3개 지회가 원·하청 3자 직접교섭 테이블 내지는 원·하청포럼 쟁취를 내걸고 투쟁한 결과 원청 인사지원실장 명의의 확약서를 받았고 원·하청 노사 합동포럼을 운영할 것을 합의했다”며 “현대모비스 10개 지회도 원청사가 참가하는 미래차위원회와 교대제 재편 위원회를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위아 원·하청 노사 합동포럼은 회사 경영 실정, 공장별 고용문제, 생산현안 등에 관해 논의하는데 올해 7월까지 5차례 열렸다.

국내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되는 적정임금제 도입도 해법으로 제시됐다. 심규범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연구센터 전문위원은 “적정 공사비 지급이 모든 문제 해결의 첫 단추”라며 “건설공사에서 단가를 후려치면 공사비 부족으로 인해 재하도급, 편법 시공으로 약자에 (위험과 비용이) 전가된다”고 지적했다. 원청 조선업체가 시장가격보다 낮은 기성금을 협력업체에 지급하면 협력업체가 하청노동자의 생산 효율을 높이려 빠른 작업을 강요하고, 사고 위험이 높아지는 악순환 구조다. 낮은 기성금 탓에 제대로 임금을 주지 못해 임금과 4대 보험을 체납하는 일도 발생한다. 피해는 다단계 하도급구조 맨 아래 하청노동자가 입는다.

심규범 전문위원은 “적정임금제는 노동자에게 줘야 할 임금 수준을 직접 규제하는 것으로 가격경쟁을 억제하고 기술경쟁을 유도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시행 중이고, 한국에서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관련 조례를 제정해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현장에서 시범사업 중이다. 심 전문위원은 “조선업에서 적정임금제 시범사업 대상을 선정해 도입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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