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노동계가 술렁이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강조하면서도 산업안전과 관련해 재계 입장을 상당부분 수용할 조짐이다. 예상한 대로 성과·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유연근로시간제 확대를 포함했다. 윤석열 시대 노동정책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나.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대통령직 인수위는 노동 분야 국정과제 첫 번째 과제로 ‘산업재해 예방 강화 및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지원’을 언급했다. 과제 목표로 “산업재해 취약부문에 대한 산업재해 예방을 강화하고, 산업현장에 맞게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 기업 자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삼았다.

기업의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확산을 지원해 산업재해예방 강화와 실질적 사망사고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내용이다.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해 온 ‘법령 개정 등을 통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지침·매뉴얼을 통해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명확화’를 추진하겠다고 명시했다.

문장의 배열 순서를 바꾸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산업안전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기업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법령이 아닌 지침 매뉴얼로 완화하고, 명확화라는 이름으로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좁히는 방향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굉장히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산업재해는 사람이 다치고 사망한 뒤에 사후 수습하는 것을 위주로 하기보다는, 반드시 철저한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많은 내용이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령을 촘촘하게 합리적으로 잘 설계하면 기업하시는 데 큰 걱정 없도록 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예방장치여야지 사고 났을 때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운영돼선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데, 산업안전 분야의 국정과제는 정확히 이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됐으나 산업안전 분야는 기업의 경영책임자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을 만큼 자율적으로 운영돼 왔다. 아니, 자율을 넘어 자유방임 상태로 운영돼 왔다. 산재는 노동자 개인이나 중간관리자들의 부주의나 관리 소홀에 기인하는 것으로 처리됐고, 기업의 생산·이윤 추구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으로 치부됐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매년 2천여명이 일터에 나갔다 귀가하지 못하는 산재사망률 1위의 위험한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산업안전 문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권한과 이익은 독점하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체계 및 운영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 대표적인 책임 면탈 구조가 바로 원·하청 기업구조와 행위자 중심의 산업안전보건법 체계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입법이 바로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을 통한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전면적인 안전조치 의무 부여이고,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통한 경영책임자에 대한 의무와 책임 부여였다. 그마저도 안전보건확보 의무 반기별 횟수 제한을 통한 실효성 저하, 법인에 대한 처벌의 완화,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등 법의 억제효과를 반감하는 반쪽짜리 입법에 그쳤다는 우려가 크다.

이들 법의 개정과 제정은 결정 권한을 가진 원청과 경영책임자에게 권한에 비례하는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산재를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생산을 지시하고 결정하는 자가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서는 안전은 구두선일 뿐이고, 자율은 책임을 수반할 때에만 실질을 가질 수 있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처럼 권한과 책임을 서로 연계시켜 실질적인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기업문화를 유도하자는 것이 전면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다. 그런데도 책임을 면제하는 자율(?)로 회귀하려는 퇴행적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의심을 갖게 한다. 이 법들이 정착하고 제대로 실효성을 발휘하기도 전에 시행령을 개정해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안전 책임을 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노동부가 재계 입장에 편승한 윤석열 정부의 코드에 맞춰 시행령 개정안을 인수위에 보고했다는 소문이 있다.

지난 노동절에 윤석열 당선자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 말이 진심이라면 안전에 대한 기업과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제한하고 책임을 완화하려는 시행령 개정 목표는 철회해야 한다. 사람의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