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 이주여성노동자 처우개선대책위 회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 공공기관 이주여성노동자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출신국과 관계없이 임금 차별이나 그 어떤 차별도 당하지 않고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근로기준법에 나온 근로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이주노동자도 당연하게 누릴 수 있어야지 않겠어요?”

국적을 알리기 어렵다고 밝힌 결혼이주 여성 A씨가 5일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수도권의 한 가족센터에서 10년 이상 일한 A씨는 지난해부터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에 가입해 활동했다. 가족센터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이주여성들이 받는 임금 차별과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알리고 있다. 신원이 드러나 또 다른 차별과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지만,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A씨는 수년 전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이야기한 이유로 사내에서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센터 관리자들은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며 육아휴직을 부여하길 거부했다. A씨만큼 한국어와 모국어 구사 능력이 높은 직원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A씨는 결국 육아휴직을 받지 못했다. 센터의 다른 선주(정주)민 직원은 3명이나 육아휴직을 썼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 A씨를 모함하는 이야기가 사내에 나돌기 시작했다. “저 사람 때문에 센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든지 “A씨의 정신이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그의 귀에도 들려왔다. 몸과 마음을 헌신한 직장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지난해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

A씨는 “10년 넘게 선주민과 동일한 세금을 내고 일해 왔다”며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육아휴직 권리를 누리려고 하니 ‘투명인간’이 됐다”고 토로했다. 선주민들에게만 적용되는 호봉제도 그를 괴롭힌다. 10년 넘는 경력이 쌓여도 세전 월 190여만원의 급여를 받는 A씨는 “‘이렇게 적은 월급으로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며 “고유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도 여러 개 맡아서 하다 보니 때로는 정체성 혼란이 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차별받고 있다”는 이주여성 86.4%
호봉 적용받는 이주여성은 고작 11.9%

A씨가 경험한 차별은 그만이 겪은 것은 아니다. 가족센터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공간이지만, 정작 이곳에서 일하는 A씨 같은 결혼이주 여성들은 임금차별이나 괴롭힘을 겪고 있다.

가족센터(옛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여성가족부가 예산을 지원해 민간위탁기관 혹은 지방자치단체(직영)가 운영하는 일종의 사회복지시설이다. 가족상담·가족교육을 하고 다문화가족·북한이탈주민 가족 등 다양한 유형의 가족도 교육하고 지원한다. 타국에서 와 한국어 구사가 쉽지 않은 결혼이주 여성들은 이곳을 통해 법률·의학 상담 때 통번역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센터 내 직종 중 통번역지원사와 이중언어코치는 일을 구하기 어려운 결혼이주 여성만을 채용대상으로 두기도 한다.

사회복지지부가 지난달 5일부터 18일까지 가족센터에서 근무하는 이주여성노동자 11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86.4%의 응답자가 센터 안에서 “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센터에서 경험한 차별이 무엇이냐는 질문(복수응답)에 대해서는 호봉·수당 미적용과 같은 급여문제(89.8%)가 가장 컸고, 승진기회(49.2%)와 경력차별(39.8%)을 꼽았다. 국가·인종차별을 경험했다는 이도 19.5%나 됐다. 응답자의 89.8%는 임금에 만족하지 못했고, 93.2%는 “임금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호봉을 적용받고 있다고 답한 이는 11.9%에 불과했다.

가족센터 운영의 지침이 되는 ‘가족사업안내’를 살펴보면 결혼이주 여성만이 채용되는 통번역지원사와 이중언어코치 직군은 호봉표가 없다. 하지만 선주민들이 채용되는 안전관리직 같은 기술직이나 행정직은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따라 경력을 인정하고 호봉제를 적용한다. 따라서 A씨와 같이 10년 넘게 가족센터에서 일해도 최저임금에 약간의 수당을 더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이주여성이 대부분이다.

결혼이주 여성들이 진입하는 직군은 전문성도 높게 요구된다. 결혼이민자와 가족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통번역지원사의 경우 한국어능력시험(TOPIK) 4급이 요구된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이 시험에서는 4급을 따면 일반적으로 국내 대학 입학 자격이 충족된다. 다문화가족 자녀가 두 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이중언어코치도 마찬가지로 토픽 4급을 요한다.

이진혜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는 “가족센터에서 이주여성의 일은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업”이라며 “최근 코로나19를 겪으면서는 가족센터 통번역사들이 병원과 구청에서 고초를 겪는 결혼이민자들에게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인권위 “하는 일 다르기 때문에 차별 아냐”
“인권위 결정, 차별 정당화” 우려

노동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 문도 두드렸다. 가족센터에서 10년 동안 통번역지원사로 일한 B씨가 2020년 “내국인 노동자들은 호봉체계의 적용을 받아 매년 임금수준이 상승하고 승진 기회도 주어지는 반면 이주여성은 임금수준과 승진 기회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며 차별시정 진정을 냈다. 인권위가 진정 제기 1년6개월 만인 지난달 12일 답변을 내놓았다. 결론은 기각이었다. 인권위는 결혼이주 여성에게 호봉제를 적용하는 것을 두고 “내국인이 수행하고 있는 기본사업과 진정인이 수행하는 사업의 취지와 수행 내용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선주민과 결혼이주 여성이 각각 다른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차별의 정의에 해당 사례가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다만 인권위는 “결혼이민자라는 이유로 실제 근로가치에 맞는 적정 수준의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주여성들은 이번 인권위 진정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A씨는 “이주여성들이 어렵사리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냈는데 인권위가 ‘(우리의 일이) 선주민과 동일하지 않다’며 기각했다”며 “선주민과 우리가 동일하지 않다고 인권위가 또다시 차별했다”고 비판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주여성노동자의 직종은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최저임금이고 경력인정도, 승급기회도, 육아휴직 기회도 정주(선주)노동자와 차별받는다”며 “설계 자체부터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저임금 일자리인데 이런 정책은 결국 이주민과 이주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인데도 최근 인권위가 잘못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여성가족부도 인정한 처우개선 필요성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춰야”

결혼이주 여성 차별 실태가 알려지면서 2년 전 ‘공공기관 이주여성노동자 처우개선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대책위에는 민주노총·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등이 참여해 이주여성노동자 차별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대책위가 목소리를 내자 여성가족부는 2020년 최저임금에 준하던 통번역지원사와 이중언어코치의 임금을 이듬해 인상했다. 매년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던 급여 수준을 2021년 최저임금 대비 7% 이상 지급하도록 지침을 수정한 것이다. 올해는 약간의 경력수당도 더해졌다. 실근무 경력이 만 3년 이상이면 월 7만원, 5년 이상이면 월 10만원, 7년 이상이면 월 15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책위가 요구해 온 호봉제는 도입되지 않았다. 차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책위는 가족센터가 사회복지시설의 하나인 만큼 이들에게 사회복지사에 준하는 호봉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가족센터에서는 선주민 사회복지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매년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 사회복지사들은 민간위탁시설에서 근무하든 국공립복지시설에서 근무하든 이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책정한 임금을 받는다. 2005년부터 사회복지시설 업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하면서 노동자의 보수 수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복지부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다.

김호세아 노조 조직쟁의차장은 “가족센터에서 이주여성노동자가 하는 업무는 선주민 중심의 사회복지사 업무만큼 중요한데 인권위는 두 업무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규정해 차별을 인정했다”며 “가족센터 내에서 이주여성노동자 업무의 중요성을 고려하기보다는 그저 이주여성과 선주민의 업무 내용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차별을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은 사회복지시설 내 여러 직종에 대해 호봉제를 권고하고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에 준하는 임금과 호봉을 가족센터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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