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올해 초 전기노동자 고 김다운님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고인은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신주에서 위태로이 홀로 작업을 수행하다 참변을 당했다. ‘발주처’일 뿐이라고 사고와의 관계를 극구 부정하던 한국전력공사는 세간의 비판을 비켜 갈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지난 1월9일 고 김다운 노동자의 작업을 포함한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 대책’을 내놓았다.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일하는 활선작업을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추락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도 전면 금지하겠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도 확대 보장하겠다고 천명했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안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다는 원칙을 모든 임직원이 되새기면서 올해를 중대재해 퇴출 원년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전대책 실효성을 둘러싸고 현장의 반발이 거세다. 한전의 안전대책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좀체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회는 지난 16일부터 노조의 지침으로 작업중지권을 발동했고, 고 김다운 노동자가 수행했던 작업(COS투개방 업무)을 전면 거부를 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상황이 발생했을까?

한전이 안전대책을 내놓을 당시에도 미흡하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장의 우려가 깡그리 무시된 채 ‘안전로프 활용 전주 인력 오름’ 사업이 추진 중이다. 그 결과 한전은 지난달 4일과 10일, 이달 10일 세 차례 시연회를 개최했다. 달리 말하면 1월에 ‘작업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을 금지하겠다’고 공언해 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말을 바꿔 작업자가 전신주에 오르는 방안을 ‘안전대책’이라고 내놓고는 작업을 종용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한전의 ‘안전로프 활용 전주 인력 오름’에 대해 당사자인 전기노동자들은 “한전이 시키는 대로 하면 사고 난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시연회에서 한전은 △추락방지 매트 설치 △슬링을 활용한 2인1조 작업 절차를 제시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전선들 사이에서 작업을 하다가 추락을 하더라도, 추락방지 매트가 있으니 괜찮다는 것인가? 전기노동자들은 전봇대가 위치한 작업공간에 추락방지 매트를 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추락시 매트 위에 떨어질 확률 또한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2인1조 슬링작업은 어떨까? 전기노동자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 작업자가 자신의 몸에 달린 로프를 고리가 달려 있는 슬링에 연결하고 전신주를 오르면, 다른 작업자가 지상에서 로프를 당기는 작업방식인데, 이럴 경우 자칫 전신주에 올랐던 작업자가 추락 등 사고를 당하면 줄을 잡고 있던 노동자도 함께 줄에 휩쓸릴 수 있다. 전신주 붕괴나 파단에 대처할 수 없어 2차 사고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

방안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활선고소작업차를 투입하면 될 문제다. 활선차 공급이 부족하고 활선차가 투입될 수 없는 경우 불가피하게 전신주에 올라야 하는 상황도 있지만, 이 역시 안전한 승주작업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우선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한전은 이를 무시한 채 위태로운 방식으로 노동자가 전신주에 매달려 일하기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책이 버젓이 제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노동자들은 실제 작업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특히 고 김다운 노동자의 죽음이 ‘감전사’인데도 그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엉뚱하게 ‘추락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돼 한전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을 내놓으며 마치 모든 책임을 다 한 것처럼 포장하고 작업을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기노동자들의 작업거부가 진행되자, 한전이 이를 막기 위해 교묘하게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한전은 ‘야간 긴급복구 및 COS투개방 업무에 대한 작업거부 대응 공문’을 통해 사업소별로 배전전문회사에 대한 실적 관리를 하고, 배전전문회사가 내부적으로 작업중지를 하고 있는 노동자를 징계했다고 소명하면 실적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등의 지침을 내렸다. 한전은 1월9일 안전대책을 발표할 때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무리한 작업량이나 단독작업 같은 부적절한 작업지시에 대한 것까지 전면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뒤로는 이런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는 산재예방을 위해 유해·위험에 대한 확인·점검 개선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위험을 발굴하고, 작업방식, 안전·보건 조치 적용에 대해 감독해 위험을 최소화하라고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작업방식을 변경하고 유해·위험을 대체하는 등의 방안을 통해 유해·위험을 제거하거나 통제하고, 안 되면 작업중지를 하는 등의 조치까지 강구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전이 해야 할 것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실행하는 것이 먼저다. 자신들이 내놓은 대책이 미흡하다면 현장의 전문가들인 작업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고, 강구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작업거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다. 한전은 순서가 잘못됐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