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건설노조와 전봇대 개폐기 작업을 하다 감전사고로 숨진 한국전력공사 협력업체 노동자 고 김다운씨의 유족이 지난 1월1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한전에 위험의 외주화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법원이 한국전력공사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감전사고 책임과 관련해 안전조치의무가 부과된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한전이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 사업주’에 해당하는데도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이번 판결로 ‘도급인’이 아닌 ‘발주자’라는 한전측 주장은 힘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측은 지난해 11월 한전 하청업체 노동자 고 김다운씨 감전사고와 관련해 ‘건설공사 발주자’라고 주장해 왔다.

한전 벌금 700만원·본부장 집유 확정
대법원 “도급 사업주” 여러 차례 언급

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31일 하청노동자 감전사와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한전 충북본부장 박아무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양벌규정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한전 법인도 벌금 700만원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한전이 직접 공사를 수행하지 않고 사업의 진행 과정을 관리·감독만 했더라도 옛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도급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지난해 1월16일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전의 산업안전보건법(29조1항)은 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사업에서 전문 분야의 공사로 이뤄져 시행되는 경우 각 전문 분야에 대한 공사의 전부를 도급했다면 사업주에게 산재예방조치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도급 사업주’를 판결문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다. 먼저 해당 조항의 해석을 구체적으로 판시했다. ‘전문 분야의 공사’와 관련해 건설산업기본법상 ‘전문공사’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의 공사를 의미한다고 폭넓게 해석했다.

‘사업의 장소’도 시간적 동일성까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업주가 공사 전부를 분야별로 나눠 하청업체에 도급해 자신이 직접 공사를 수행하지 않고 사업의 전체적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했다면 ‘같은 장소에서 이뤄진 사업’이라고 판시했다.

이를 전제로 “한전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도급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봐 피고인들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모두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한전 충북본부장 박씨가 사전에 감전사고 예방을 위반 방호관 설치가 제대로 됐는지를 점검하지 않는 등 재해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작업계획서 미작성과 현장에 직원을 배치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본 원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한전도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지정하지 않아 안전관리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장철탑 이설공사 분리, 도급인 해당
‘판박이’ 고 김다운씨 사건 영향 줄 듯

이번 사건은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발생해 한전의 형사책임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산업안전보건법 2조에서 ‘건설공사 발주자’는 도급인에서 제외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주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제외한 징역형의 처벌 규정은 없다.

한전의 하청업체인 A사 소속 노동자 B씨는 2017년 11월28일 전류가 흐르는 전선 인근의 약 14미터 높이에서 작업하다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1시간 만에 쇼크로 숨졌다. 당시 한전 충북지역본부는 ‘지장철탑 이설공사’를 A사에 맡겼다. 조사 결과 B씨는 절연용 보호구와 장비를 지급받지 못한 채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접근 한계거리’도 지켜지지 않아 22.9킬로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배전선로 인근에서 작업하다가 감전됐다.

하급심은 모두 한전이 지장철탑 이설공사를 분리해 도급해 ‘도급 사업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한전이 도급 사업주 지위에 있다고 보지 않아 별도의 안전보건총괄책임자를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봤다.

이번 사건은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전인데도 도급인 지위를 인정한 데에 의미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전문공사·도급사업주·같은 장소에 대한 해석에서 실질적으로 작업을 지배·관리하는 도급 사업주에게 안전조치의무를 인정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박다혜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대법원은 도급인의 책임 범위가 확대되기 전인 옛 산업안전보건법으로도 한전이 도급인의 지위에서 책임을 부담한다고 본 것”이라며 “도급인의 책임이 확대·강화한 개정법이 적용된 사건에서는 한전에게 도급인으로서 안전조치의무가 있다고 판단될 여지가 커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안전조치 없이 홀로 전기 연결작업을 하다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진 김다운씨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는 한전이 도급인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인 상태다. 노동부 관계자는 “아직 기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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