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자가 보호장비 없이 전신주에 올랐다가 감전사한 일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현장소장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만 일부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법원은 지상작업자가 전기가 흐르는 전신주에 보호구를 미착용한 채 오를 이유가 없었다며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봤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활선 상태’ 모르고 저압선 해체
감전 위험에도 현장소장은 ‘점심식사’

1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북 완주군 소재 건설업체 B사의 현장소장 A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사고는 2020년 8월24일 발생했다. B사 소속 노동자들은 전북 고창군에서 전신주의 전선 교체와 이설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현장소장 A씨는 이날 오후 2시께 전신주를 철거하던 C씨에게 기존 작업을 중단한 채 다른 전신주에서 작업하던 직원을 도우라고 지시했다.

C씨가 자리를 비우자 기존 전신주의 저압선은 ‘활선’ 상태로 바닥에 늘어졌다. 이를 몰랐던 보조작업자 D(사망 당시 52세)씨는 7~9미터 높이에서 저압선을 철거하다가 감전돼 목숨을 잃었다. 그는 전신주 옆 은행나무 위 4미터 지점에서 발견됐다. 당시 D씨는 절연장갑을 끼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감전 위험을 알리지 않은 채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떠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A씨가 작업자에게 미절연 상태인 전신주 충전부에 접근 제한 등 조치를 하지 않은 등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또 사전에 감전 위험을 경고하는 ‘감시인’을 배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측은 “D씨가 감전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혐의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 △절연용 보호구 지급의무 △접근제한 조치의무 △감시인 배치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보조작업자인 D씨에게 활선작업차 없이 전신주에 오르도록 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벌금 200만원 →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유족 엄벌 탄원에도 “피해자 상당한 과실”

1심은 전선 차단 등 사업주가 정기감독을 하지 않은 부분만 유죄로 판단해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작업자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D씨가 7~9미터 높이에 있는 충전부에 접근할 것까지 예상해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감시인을 배치할 의무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감전된 위치는 맨몸으로 올라가기에 상당히 어려운 높은 위치인 데다 활선차량이 3대가 존재하고 주상작업자가 3명이 있는 상황이었다”며 “피고인들이 피해자에게 안전장비 없이 7~9미터 높이까지 올라가서 작업하도록 지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판시했다. 보호구 없이 작업할 경우 감전 위험이 있다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데도 D씨 스스로 전신주에 올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항소심은 업무상 과실치사 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활선 상태에 있다는 위험성을 지상작업자에게 사전에 알려 저압선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지 않도록 지시하거나 경고했다면 피해자가 전신주에 올라가지 않거나 적어도 절연용 보호구를 착용한 채 전선과 접촉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일반적인 작업 범위를 벗어난 장소에서 보호구 없이 작업할 것을 예견하고 방지할 의무는 없었다며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유족은 엄벌을 탄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에게도 상당한 정도의 과실이 인정되고 사고 발생의 책임을 온전히 피고인에게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A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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