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서울 서대문구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12년차 경비노동자 홍아무개(66)씨는 3~4년 전부터 재활용품 분리수거 업무에 대한 별도 수당을 받았다. 홍씨가 계약한 용역업체가 아닌 관리사무소 차원에서 월급과 별도로 4만~5만원씩 지급했다. 그런데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 시행으로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업무가 경비원 업무로 포함되면서 관련 수당이 깎일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홍씨는 “분리수거를 시키는 게 법 위반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수당이 생긴 건데 이번 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없어진다는 얘기가 많다”며 “임금은 줄고 해야 할 업무만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경비노동자에게 경비업무 외에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현장에서는 기존에 하지 않던 업무가 공식업무에 포함되면서 업무가 늘어나거나 반대로 해 오던 업무에 제동이 걸리는 등 혼란이 가중되면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잡초제거’는 허용업무, ‘제초작업’은 제한업무?

홍씨를 비롯한 경비노동자들은 6일 오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아파트 경비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증언대회’를 열고 “감시·단속적 노동자란 이유로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며“헌법과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전국아파트경비노동자공동사업단, 민주일반노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지난 10월21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르면 경비업무 외에 △청소와 이에 준하는 미화의 보조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배출 감시 및 정리 △안내문의 게시와 우편수취함 투입 등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업무를 할 수 있다. 경비업법에 따라 경비업무 외 다른 일을 병행·겸직할 수 없다는 위반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됐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업무’에 대해 구체적인 허용업무와 제한업무를 제시했다.

문제는 허용업무와 제한업무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청소미화보조 업무에서 ‘잡초제거’는 허용업무에 속하지만 ‘제초작업’은 제한업무에 속한다. ‘부분적 가지치기’는 허용업무지만 ‘수목 식재’는 제한업무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공동주택에는 경비원 이외에 미화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단지 ‘미화 보조’라고 했을 때 미화원의 업무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불분명하다”며 “잡초제거는 허용업무인데 기술장비를 요하는 제초작업은 제한업무로 제시돼 예초기를 활용해서 하던 일을 손으로 직접 해야만 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 상황 파악 못하는 노동부

다단계 간접고용 구조 속 ‘입주민 갑질’ 문제도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을 통해 입주자가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행위가 규정됐지만 벌칙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 안산의 아파트에서 일하는 전아무개씨는 “관리소장 지시에 따라 단지 내에 쌓인 옷가지를 치웠는데 이를 옮겨 둔 입주민이 1년 넘게 쫓아다니며 괴롭혔다”며 “관리사무소에서는 책임을 회피했다”고 증언했다.

고용노동부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에 맞춰 ‘공동주택 경비원의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판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경비원에게 추가되는 업무강도에 따라 감시·단속적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판단 결과에 따라 경비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연장근로수당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업장 상황에 따라 노동부 결론이 달리 나올 것으로 예상돼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노동부 임금근로시간과 관계자는 “현재까지 본부에 (감시·단속적 근로자 판단에 대해) 접수된 사항은 없다”며 “지방관서에도 보통 임금체불로 접수가 되는데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특정해서 통계가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전산상 집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우근 정책위원은 “그간 방치되다시피 한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 유효기간을 설정하고 갱신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며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법안이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책임지고 입법까지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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