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초등학교 경비원이 야간근무를 하다가 뇌경색을 일으켜 사망한 것은 업무상 재해라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경비원이 업무특성상 대기시간과 휴식시간을 탄력적으로 가질 수 있다고 본 1·2심 판단은 잘못됐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11일 경비노동자 A씨(사망 당시 69세)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일주일 연속근무 중 쓰러져
1심 “집중 필요한 업무 아냐” 기각

A씨는 2014년 7월부터 초등학교에서 경비원으로 야간에 근무해 왔다. 평일에는 오후 4시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 휴게시간 2시간과 수면시간 8시간을 제외한 6시간을 일했다. 휴일은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24시간(휴게시간 3시간·수면시간 8시간) 뒤 퇴근했다. 휴무는 2주 간격으로 월 2회에 그쳤다.

그는 별도의 경비실 없이 일했다. 교내를 돌아다니며 순찰과 쓰레기 줍기, 화초 물주기 등의 업무를 했다. 쉴 때는 숙직실을 이용했다. 그러던 중 2017년 어린이날 전날인 5월4일 야간근무를 하다가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에서 ‘뇌경색증 및 기저핵 출혈’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심정지로 20여일 만에 숨졌다. 그는 쓰러지기 전 일주일 내내 근무했다.

이에 A씨 아내는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해 달라고 공단에 요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2017년 10월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재심사 청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위원회는 2017년 12월 개정되기 전의 고용노동부 고시를 따랐다. 당시 고시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했을 때 업무 관련성을 인정했다. A씨의 12주간 업무시간은 평균 57시간이라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유족은 2018년 3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의 업무가 ‘단속적’이고 충분히 쉴 수 있는 환경이라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씨가 실제로 순찰업무를 수행한 시간은 4~5시간 정도이고, 근무시간 중 계속해 고도의 집중과 긴장을 요하는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며 “경비업무 특성상 대기시간과 휴식시간도 비교적 탄력적으로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생체리듬 혼란으로 피로 유발”
“1·2심, 감시·단속 업무 편견에 법리오해”

특히 “매월 이틀간 연속해 24시간씩 휴일이 보장되고, 일할 때도 독립된 공간에서 8시간 연속해 수면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업무환경을 볼 때 정신적 스트레스나 만성과로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강당 문을 여는 업무와 관련해서도 편도 400걸음만 움직이면 된다며 유족이 주장한 1시간의 야간업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가 뇌경색 발병 및 악화에 상당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법원 감정의 소견 역시 배척했다. 2심도 1심과 동일하게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경비업무의 특성과 의학적 소견, 개정된 고시의 규정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았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개정된 고시 시행 이전에 부지급처분이 있더라도 개정된 고시를 참작해 상당인과관계의 존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발병 전 망인의 12주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고, 휴일이 부족한 업무로서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월 2회에 불과한 휴무도 고려했다. 휴무일이 적어 생체리듬의 혼란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 업무상 재해의 상당인과관계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유족을 대리한 조애진 변호사(법무법인 시대로)는 “교대제 근로의 건강 영향에 대한 몰이해와 감시·단속 업무는 신체 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편견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며 “항소심에서도 1심의 오류가 정정되지 못했는데, 대법원에서 법리오해를 뒤늦게나마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