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오후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문상환 금속노조 경남지부 정책기획부장과 실시간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정남 기자>

직장갑질119가 1일이면 출범 4년을 맞는다. 민간공익단체로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개선을 하는 데 중요한 분기점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150명 넘는 노동전문가·변호사·공인노무사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담겨 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들이 “월요일·금요일 저녁의 스태프”로 부르는 이 두 사람도 그렇다. 단체 출범 후 4년 동안 붙박이로 월요일과 금요일 상담을 맡아 저녁 스태프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월요일 저녁 스태프 권오산(53·사진)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금요일 저녁 스태프 문상환(52·사진) 금속노조 경남지부 정책기획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직장갑질119가 상담받는 노동자의 궁금증과 아픔을 완벽히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 아픔에 공감하며 법률 대응 방식과 대처방안을 조언하지만 사건의 최종 해결자는 상담신청을 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노조를 만들어 대처하자고 알려 주고 싶지만, 이건 법률가의 영역이 아니다. 미조직 노동자를 만나고, 상담하고, 조직화 사업을 했던 노조활동가가 직장갑질119에 필요했다.

두 사람은 지역에서 20여년간 산별노조운동을 한 활동가다. 상당 기간을 미조직·비정규 담당자로 살았다. 사실 산별노조 지역본부에서 ‘미조직·비정규 담당자’로 살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상담은 물론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하기 위해 지역의 곳곳을 발로 뛰는 게 이들의 일이다. 성과 내기 쉽지 않고 일도 많으니 ‘맨땅에 헤딩’이 이들을 표현하는 딱 맞는 말이다. 사업주 갑질, 원·하청 갑질, 임금체불, 산업재해와 같은 사건을 대하기 일쑤라 노동 관계법 지식이 깊어야 한다.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에게 직장갑질119는 “고생 많은데 좀 더 고생해 달라”며 팔을 부여잡았다. 그 후 4년을 월요일과 금요일 저녁 스태프로 살아왔다. 조직노동에 속해 있으면서 미조직 조직화 사업을 오랫동안 맡아온 이들에게 직장갑질119 활동의 소회를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28일 오후 실시간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진행했다. 권오산 부장은 대양판지 청주공장에서 단체교섭을 끝내고 광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노트북을 펴 놓고, 문상환 부장은 경남지부 사무실에서 홀로 휴대폰을 들고 참여했다.

“미조직 조직화, 노조 사업에 도움될까 상담 시작”

사회 : 두 사람 모두 직장갑질119 스태프로 상담 활동을 4년간 하고 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권오산 : 직장갑질119가 구체화하기 전 상담활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단체를 만들자는 움직임도 일었다. 무작위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담활동을 해야 한다는 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지만 실제 참여할지는 망설였다. 노동관계법 등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조직 노동자 조직사업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상담활동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배우면서, 공부하면서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만으로 시작했다.

문상환 : 단체 출범 이후 함께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가 상담하는 오픈채팅방에 들어와 보라고 하더라. 초기였는데도 상담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지켜보게 하더니, ‘스태프가 부족한 것 같지 않느냐’며 동참하라고 하더라. 안 할 수가 없었다.(웃음)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새 4년이 됐다.

사회 : 직장갑질119 상담은 오픈채팅과 이메일로 이뤄진다. 각자 맡은 상담시간은 언제인가.

권오산 : 처음에는 월요일 저녁 3시간을 맡았다. 보통 노조가 월요일에 회의가 많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많다는 얘기다. 회의가 끝난 뒤인 저녁 시간이 가장 안정적으로 상담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봤다. 단체 출범 초기부터 월요일 저녁 시간대를 찜했다. 3시간을 하다가, 2시간으로 줄었고, 지금은 1시간30분 상담하고 있다.

문상환 : 직장갑질119는 주간·월간 단위로 스태프 상담시간표를 만들어 운용한다. 노조활동가는 월요일이 제일 편한 시간대인데 이미 권오산 동지가 붙박이로 맡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은 정말 ‘쥐약’ 시간대인데…. 요청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권오산 : 문상환 동지가 정말 대단하다. 금요일 저녁에 상담을 맡는 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문상환 : 주변 동지들이 도와준다. 문상환은 금요일 저녁에는 상담하니 술자리에 부르지 마라, 일 시키지 마라고 한다. 술자리가 있더라도 상담이 끝난 밤 9시 이후 불러야 한다는 규칙이 정해졌다. 가족들이 좋아한다.(웃음)

직장갑질119 출범 4년간 월요일·금요일 저녁 상담 도맡아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 권오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

사회 : 매주 같은 시간에 상담하는 삶을 4년간 산다? 상상이 되지 않는다.

권오산 : 월요일 회의가 없는 날이 문제더라. 그런 적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 빠진 적이 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왜 상담하지 않느냐는 직장갑질119 운영진 연락을 받았다. 운영진과 상담을 기다리던 분들에게 굉장히 죄송스러웠다.

문상환 : 상담 시작 30분 전에 급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간혹 빠지기도 했다. 노조를 찾은 분과 상담을 하다가 정작 직장갑질119 상담시간대를 놓치기도 하고. 정해진 요일, 정해진 시간을 맞춘다는 것이 쉽지는 않더라.

권오산 : 그래서 되도록 사무실, 혹은 일찍 귀가하는 등 안정적인 공간에서 상담하려 애쓴다. 이동 중 길거리에서 노트북을 펴거나, 휴대전화로 상담을 한 적도 있다. 제가 엄지손가락만 쓴다. 그래서 타자 속도가 느리다. 가능하면 컴퓨터로 하려 한다.

문상환 : 가족도 가능하면 집에 와서 상담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상담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도 한다. 초기에는 3시간 상담을 했는데, 최근 1시간30분으로 줄어서 그래도 생활에 좀 여유가 있다.

사회 : 상담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권오산 : 초기에 사업주가 선산 벌초는 물론 집안의 온갖 잡일을 다 시킨다는 상담이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두발 규제를 한다는 여성노동자,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데 그 수선비용은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경우, 탈의실에 남성 임원이 들락거린다는 사례 등이 기억에 남는다. 상담 후 노조를 만들게 됐다고 연락 온 경우도 있다. 가능하면 상담할 때 혼자 대응하지 말고 동료들과 함께하기를 권유한다. 가장 좋은 것은 노조를 만들거나, 노조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한다. 그런 설명을 듣고 노조를 만들었다는 분이 있었다. 정말 뿌듯하더라.

문상환 : 개별사건은 많아서 다 기억나지 않지만, 금요일이라는 특정 시간대를 맡아 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 직장내 갑질이 발생하면 인간관계에서 힘든 점이 생긴다. 이런 문제를 오픈채팅방에서 공유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서로의 힘듦을 나누는 거다. 자기의 아픔을 토로하는 상대방이 있어서 좋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상담의 최대치라고 생각한다.

권오산 : 직장갑질119를 통해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 본인이 당한 심적 고통을 하소연할 곳을 찾다 찾다 이곳에 온다. 자기들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 그 자체로 답답함이 풀리는 거다. 누군가 자기 말을 경청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조직노동 할 일 여전히 많아, 상담하며 스스로 채찍질”

사회 : 왜 노조가 아니라 직장갑질119 같은 단체를 찾게 되는 걸까.

권오산 : 노조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시각도 있고, 혹여나 노조와 상담하면 가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도 있는 것 같다. 노조를 찾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용기를 내고 행동해야 하는 면이 있다. 직장갑질119는 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오픈채팅을 통해 자기 얘기도 편안히 할 수 있고, 다른 이의 얘기도 듣고, 상담도 하는 거다.

문상환 : 노조가 무엇인지 접해 볼 경험 자체가 아주 적다. 어디를 가야 상담받을 수 있는지 오랫동안 찾다 직장갑질119에 오기도 한다. 노조 상담소는 상담받을 장소와 시간대가 정해져 있다. 상담받으려면 일과 중에 가야 하니, 찾기 어렵다. 한 번은 예정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오픈채팅방에 입장했다. 저를 기다리면서도, 서로 얘기하면서 미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더라. 직장갑질119는 그런 공간이 됐다.

사회 : 조직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미조직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있다.

문상환 : 여전히 노조활동가가 할 역할이 많다. 조금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직장갑질119라는 이런 공간이 열린 것이다.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말하지만 실제 그들을 잘 만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직장갑질119)는 삶 속에서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로 고통당하는 노동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개인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많이 반성하고 있다. 그래서 경남지부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장갑질119를 준비하고 있다. 조직노동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 되레 더 절실히 느꼈다.

권오산 : 이런 활동은 노조에서 활발히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미조직·비정규직 운동을 오래 했지만 정작 하지 못했다.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폭넓은 사업을 하면서, 그들이 노조로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사업을 해야 한다. 직장갑질119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는 기구와 단체에 조직노동이 재정·인력 면에서 뒷받침하는 것도 필요하다. 상호교류하고 연대하는 활동이 많아졌으면 한다.
 

▲ 문상환 금속노조 경남지부 정책기획부장.
▲ 문상환 금속노조 경남지부 정책기획부장.

“다양한 방식의 운동 중 하나, 계속 확산했으면”

사회 : 상담은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

문상환 : 상담을 지켜보는 가족 분위기도 좋다. 이쁘게 봐준다.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권리를 보호하는 일은 나에게 주어진 일이기도 하다. 특별한 사고가 없으면 계속할 것이다. 법과 제도는 계속 바뀐다. 하지만 조직된 노동자는 그 영향을 덜 받는다. 단협으로 쟁취했거나 쟁취해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사회 변화에 더 많이 노출된 미조직 노동자를 만나면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과 바꿔야 할 과제 등을 얻고 있다. 금속노조는 미조직 사업을 빼면 안정된 구조에 있는 노조라 볼 수 있다. 원래 노조는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직장갑질119가 그곳으로 절 조금은 이끌어 주고 있다.

권오산 : 상담에서 나온 질문들은 매우 구체적이다. 답변하기 위해 법률도 찾아보고, 판례도 찾아보고, 전문가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공부한다. 제 주요 업무가 미조직 노동자 조직사업이다. 그 사업에 상담 일이 도움이 된다. 직장갑질119에 사람이 넘쳐 나서 다른 사람이 하시겠다고 한다면 생각해 보겠다.(웃음) 상담을 받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권리를 찾는 주체로 서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이 문제는 개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병원노동자 태움 문제는 개인이 겪은 문제이기도 했지만, 전 사회적으로 곪은 상처이기도 했다.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사회 의제화하면서 해결하는 과정을 직장갑질119가 보여준 바 있다. 노동자운동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조직운동이 이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때로는 지원·후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더욱 커졌다.

사회 : 직장갑질119가 출범 4주년을 맞았다.

문상환 : 이 단체는 상담만으로 역할을 그치는 게 아니라 제도를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다. 제도를 바꾸려면 저희 같은 상담도 필요하지만 상담 내용을 축적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후속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후원이 중요하다. 직장갑질119가 안정적 활동이 가능해지면, 직장갑질과 직장내 괴롭힘이 그만큼 많이 줄어들 수 있다. 후원 부탁드린다.

권오산 : 저는 조직운동을 하면서 안정적 기반을 가지고 있고, 상담은 부가적인 일이다. 직장갑질119에 함께하는 150명의 스태프는 존경할 만한 동지들이다. 이 운동을 더 확장하면 노동자 일반 권리를 더 많이 쟁취하고 보호할 수 있다. 경남지부에서 이주노동자 직장갑질119를 만들려는 것처럼, 권리를 찾으려는 다양한 방식의 운동으로 확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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