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서울 동대문구·중랑구에서 일하는 배민라이더 ㄱ(52)씨는 지난 25일 오전 11시30분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이문동 한국외대 부근에서 도시락을 고객에게 배달한 뒤 앱에서 ‘배달완료’ 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시스템 오류로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탓에 로그아웃도 해보고, 앱을 지워도 봤다. 10분간 휴대폰과 씨름하던 김씨는 건너편에 위치함 픽업지(음식점)에서 치킨을 받아 배달지인 장안동 부근으로 향했다. 하지만 배달지 근처에 도착해서도 휴대폰은 계속 먹통이었고 정확한 동호수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정오가 넘어서야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있었다.

ㄱ씨는 “점심시간 배달수수료는 평균 6천~7천원으로 피크타임이 아닐 때보다 2천~3천원가량 높다”며 “2만5천~3만원가량 수입을 날린 셈인데 제 잘못이 아닌데도 손해가 발생하니 속도 상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KT 유·무선 인터넷 ‘먹통사태’로 배달노동자들이 피크타임 일감이 끊겨 상당수 수입감소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는 1시간여 만에 복구됐지만 플랫폼에 종속돼 일하는 배달노동자들의 취약한 상황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랫폼 노동자 취약성 드러나

26일 서비스일반노조와 라이더유니온(위원장 박정훈)의 설명을 종합하면 25일 KT 유·무선 인터넷이 점심시간대 30분 넘게 마비되면서 배달앱을 사용할 수 없었던 라이더들 대부분은 수입감소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배민·쿠팡이츠·요기요는 먹통사태와 관련해 이날까지 라이더들에게 별다른 공지사항을 내리지 않았다.

KT가 아닌 다른 통신사를 이용하는 라이더도 허탕을 치기는 마찬가지였다. SK텔레콤을 이용하는 배민라이더 ㄴ(44)씨는 “25일 오전 11시께부터 콜이 잡히지 않고 (KT를 이용하는) 음식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배달지를 알 수 없어 하루 일당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수입감소에 대한 피해 보상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 지역에서 서비스 장애가 1시간 안에 정상화했기 때문에 KT의 인터넷 이용 약관상 손해배상 기준(3시간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데다 라이더 스스로 KT측에 보상을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아한형제들은 자체적 문제로 서버가 먹통됐을 때 라이더에게 보상 방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서비스가 4시간가량 중단돼 6만원을 지급했다.

먹통 사태는 약 85분 만에 복구돼 피해 정도가 크지 않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정훈 위원장은 “그때그때 들어오는 일감을 수행하지 말지 결정하고 순간 계약이 맺어지는 '초용직'이기 때문에 사실상 30분간 실업이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사업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업체가 지지 않고 라이더가 지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구현모 KT 대표 “보상방안 조속히 마련”
노조들 “특단 조치 필요, 사장이 책임져야”

한편 이날 구현모 KT 대표이사는 홈페이지에 “고객들께 장애로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구 대표는 “유무선 네트워크 통신망 전반을 면밀히 살피는 계기로 삼겠다”며 “조속하게 보상방안 또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KT노조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경영진은 책임 있는 자세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회사의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고 무엇보다 불편을 겪은 고객의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KT새노조는 25일 “3년 전 아현화재 사태 이후 재난적 장애가 되풀이됐다”며 “원인을 엄중히 조사해서 재발방지책을 내놓고 휴먼에러 등 운영상 책임이 있을 경우 탈통신에만 집중한 구현모 사장에게 전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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