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보통 지금 시기에 물량 30개에서 50개를 배송하는 게 맞는데 지금은 평균 100개를 배송해요. 12월 말부터 물량이 쏟아져서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계속 명절 폭증기처럼 일해요.”

고양일산우체국에서 일하는 오현암(41) 집배원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공운수노조 민주우체국본부 경인지역본부장인 그는 “겨울에 이륜차로 무거운 짐을 싣고 다니다 보니 사고 위험도 높아졌다”며 “추위 때문에 긴장하고, 언제 차에 받힐까 조심해 운전하다 보니 근골격계 부담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집배원 안전사고는 지난해 11월 기준 2019년 동일 기간 대비 69건(11.9%) 증가했다. 집배원은 택배노동자와 달리 우편·등기 배송이 주 업무로 현장 노동자들은 하루 50개 이상 소포를 배송하는 것은 무리라고 입을 모은다.

민주우체국본부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정사업본부에 “동절기 집배원 과로사를 예방하려면 배달인력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달 28일부터 별도 통보 전까지 ‘특별소통기간’으로 정해 대응하겠다 밝혔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인력증원 같은 실질적 조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중량물 탓 택배 박스 부서져”

은평우체국에서 20년째 집배원으로 일한다는 남상명씨는 “매주 화요일을 죽음의 날로 부른다”며 “소포가 적은 사람도 100개가 넘고 많은 사람은 200개를 안팎을 배송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품을 회수하고 등기도 배달해야 하는데 퇴근시간 전까지 배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물량이 증가하면서 오전 8시 출근시간이 한 시간 당겨지는 경우도 많다.

늘어난 물량도 문제지만 고중량 물량 증가는 더 큰 문제다. 오현암 경인지역본부장은 “오토바이에서 꺼내지 못할 정도로 무게와 부피가 큰 물건들이 증가해 업무강도가 세지고 있다”며 “한 번은 내용물(김장김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스박스 밑단이 떨어져 나간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우정사업본부는 무게가 적다고 하지만 오토바이에 싣고 배달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며 “부피나 무게가 큰 경우 한 집 가져다 주고 ‘중간보관수도’에 들려 싣고 오길 반복한다”고 부연했다. 중간보관수도는 그날 배송물량을 모두 이륜차에 싣지 못하는 경우 남은 물량을 보관해 두는 일종의 창고 역할을 한다.

남상명씨는 “원래 개인이 초과근무수당을 신청하도록 돼 있다”며 “그런데 요즘은 (신청을) 못 하게 막아서 하루 길게는 2시간 연장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집배원은 전산시스템을 통해 초과근무를 신청하고 관리자의 결재를 받아야 초과근무수당이 인정된다.

“설날 전 배달인력 증원해야”

관리자의 초과근무수당 결재 회피와 집배원의 업무부담 증가는 우체국 경영평과와 무관하지 않다. 오현암 본부장은 “연말에 경영평가 시기 각 우체국은 평가를 받고, 평가에 따라 상여금이 책정된다”며 “위탁배달 노동자의 수수료, 초과근무수당을 줄여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 위탁배달 노동자가 배송할 물품을 집배원에게 전가하는 일도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때 농산물 택배가 증가해 5킬로그램 초과 물량이 전체 12%를 차지했다”며 “상반기 9%보다 늘어난 것은 맞지만 고중량 택배는 소포 위탁배달원(우체국 위탁배달 노동자)이 하고 집배원들이 하는 것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전체 택배 물량은 2019년 대비 6.2% 감소하고 소포 위탁배달원을 증원했다”며 “1인당 하루 평균 소포물량도 지난해 1월부터 11월 말까지 평균 27개로 지난해 대비 13개 줄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는 도서·산간 지역 등 택배가 적은 곳이 포함된 것으로, 경인지역을 포함해 수도권 택배물량은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했다. 경인지역본부는 “이 상태로 설날을 맞이하면 집배원의 안전을 담보하기 불가능하다”며 “설날이 오기 전 배달인력 증원 등 선제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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