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은 이해합니다. 반대하지 않아요. 공감하고 동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

기후위기 산업전환의 한복판에 선 발전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8월9일 IPCC 6차 평가보고서의 ‘1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했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3년 전 같은 보고서에서 2030~2052년 지구 평균온도가 섭씨 1.5도 오를 것이라던 전망은 10년 가까이 앞당겨 2021~2040년이 됐다. 2050년을 목표로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위원회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발전노동자들을 조직한 노조의 집행간부들은 이 보고서를 달달 왼다.

급격한 기후변화 결과는 끔찍하다. 평균온도가 1.5도 오르면 가뭄은 2.4배, 강수량은 1.5배 증가한다. 강설량은 5%나 줄어든다. 극한고온은 8.6배 더 잦아진다. 해수면이 오르고 지표면이 줄어들어 발생할 난민 문제도 생긴다.

공공주도의 재생에너지 개발
선 고용 후 교육 로드맵 시급

이런 상황에서 발전노동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부와 국회의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우선 발전 정규직은 발전 5사의 통합과 이를 통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진출을 요구한다. 공공노련을 상급단체로 조직된 발전 5사 정규직 노조는 최근 먼저 노조 통합에 시동을 걸었다. 노조가 산별구조를 이뤄 발전 5사와 정부에 발전사 통합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송민 통합준비위원장은 “현재 에너지시장의 구도는 발전 5사의 공급량이 절반, 민간 발전사의 공급량이 절반”이라며 “지금처럼 재생에너지를 민간 주도로 키우면 향후 공공재인 전기 가격이 인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전 5사는 천연가스(LNG)발전으로 전환한다고 하는데 이마저도 탄소배출을 경감할 뿐 없앨 수 없어 장기적인 전환 대상”이라며 “공공부문 발전노동자를 그저 패잔병처럼 철수시키고 에너지 생산을 민간에 의존하는 건 전기의 사회 공공성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석탄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한전산업개발을 비롯한 발전 비정규직의 요구는 고용보장에 쏠려 있다. 정부가 재교육 이후 고용 알선 같은 계획을 짜고 있지만 이들은 먼저 고용을 유지하고 재교육을 통해 직무를 바꾸거나 전직을 하는 방식이 옳다고 주장한다.

황규암 한전산업개발노조 남부지부 위원장은 “발전소 가동중단에 따라 사업장 곳곳이 문을 닫고 있다”며 “정부가 한가하게 계획을 만드는 동안 우리는 현실에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강조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실시한 발전 비정규직 설문조사를 보면 92.3%가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노조 대표자회의 간사는 “민간에 개방한 발전소를 재공영화하고 다시 한국전력공사로 통합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전력생산체계를 마련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필요하다”며 “당사자가 참여하는 에너지 분야의 독립적이고 실질적 논의기구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노조간부와 달리 현장서는 “왜?”
기후위기에서 사회적 약자 배제한 탓

에너지전환 필요성에도 현장 노동자들은 최근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행보에 불만이 크다. 화력발전소 발전정비를 하는 한 노동자는 “앞으로 열심히 기술을 개발하면 석탄화력발전의 탄소배출을 없앨 수 있지 않겠느냐”며 “지금 석탄화력을 다 없애지 말고 전환에 대비하면서 유지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런 인식이 생기는 이유는 탈출구가 없는 고용위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은 “탄소배출을 늘리며 부를 축적해 온 이들에게 기후위기 책임을 묻고, 불평등한 구조에서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회적 약자를 전환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계획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와 농민,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를 주체가 아닌 ‘납작한 피해자’로 분류해 사회적 구조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제대로 된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노동자는 탄소중립의 저항세력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렇다. 이태성 간사는 “이미 미세먼지 해소 국면에서 석탄화력발전소는 마치 적폐세력인 것처럼 지목돼 차가운 눈초리를 받았던 상처를 기억한다”며 “노동자와 환경·농민·여성 같은 탄소중립의 사회적 약자가 서로 반목하지 않기 위해 각종 협의체와 연대 등을 통해 노력하고 있는데 정부만 빠졌다”고 비판했다.

“노조가 기후위기 단체협약 시도해야”
전환 위기 처한 노조, 사회적 역할 필요

일각에서는 노동계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권재석 공공노련 상임부위원장은 “기후위기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노조의 적극적인 역할을 고민해야 할 단계가 왔다”며 “정부를 제외하면 가장 적극적으로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노조가 전환의 위기에 처한 각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기후위기에 필요한 대응을 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내세워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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