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 국민 노동인권교육’을 내건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이 출범 1년을 맞았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학교도 문을 닫은 시대에, 척박한 땅을 일구고 노동인권교육의 씨를 뿌리는 1년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 회의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노광표(59·사진) 한국고용노동교육원장은 “법은 만들어졌지만 전 국민 노동인권교육이 아직 사회적 시민권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 같다”며 “전 국민 노동교육 공론화를 위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률로는 누구나 노동교육을 받는 시대를 열었지만 현실은 교육받을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노광표 원장의 설명이다. 노 원장은 ‘유급 교육휴가권’을 꺼내 들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하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교육이 가장 절실하지만 교육 기회에서 가장 멀리 있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같은 취약계층 노동자부터 유급 교육휴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봤다.

근로감독관 장기 전문교육과정 신설
소방공무원·경찰 직협 대상 교육 확대

- 고용노동교육원이 출범 1년을 맞았다.
“교육원은 ‘30년 역사를 가진’ 신설기관이다. 한국노동교육원법이 만들어지면서 개원했지만 기존의 인력과 예산은 그대로 가지고 왔다. 사업목적은 늘어난 데 반해 사업을 수행하는 인력과 예산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의미다. 기관의 구조와 사업 얼개를 마련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새로운 독립기관으로서 기초를 닦는 일과 새로운 사업 목적에 맞게 수행하는 방식을 정립하려 노력했다. 노동관련 비정부기구(NGO)에 있을 때는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공공기관은 내부 절차와 합의가 중요하다 보니 일은 더딘 편이다. 몸은 무거운 대신 과정과 절차를 충분히 밟아 일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목표한 바를 명확하게 수행하는 장점이 있다.”

노동교육원은 1989년 8월 노사정 합의로 만든 전문노동교육기관인 (재)한국노사교육본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사정 공동교육을 통한 갈등조정에 초점을 맞춘 교육기관이다. 1990년 9월 한국노동교육원법이 공포되면서 ‘한국노동교육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2008년 8월 한국노동교육원법을 폐지하면서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부설 고용노동연수원으로 강등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해 3월 한국고용노동교육원법이 제정되면서 교육원은 독립기관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설립 목적도 달라졌다. 교육 대상을 기존 노사관계 당사자와 고용노동 업무 종사자에서 모든 국민으로 확대했다.

- 최근 근로감독관 집무교육이 달라졌다. 어떤 변화를 꾀했나.
“일터에서 노동인권을 실현하는 데에 근로감독관의 역량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최근 몇 년 새 근로감독관수가 크게 늘었다. 양적 확대만큼 전문성과 수사 능력 같은 질적 성장도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중견 근로감독관을 대상으로 수사 실무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15주 장기 전문교육 과정을 신설했다. 올해 말까지 진행하는데 비록 16명이지만 그 효과는 몇 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기교육 이후 이들이 현장에서 근로감독관 멘토를 맡아 학습조직을 이끌면서 사례연구나 자체 학습을 추진하게 된다. 산업안전본부 출범에 따라 산업안전근로감독관들을 대상으로 한 특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기간을 연장하고 디지털 증거분석 과정 같은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 근로감독관 외에도 교육원을 찾는 공무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에 따라 노동관계법이 개정되면서 공무원 노사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현재 소방공무원 2만명이 노조를 결성하거나 가입한 상태다. 조직률이 40~50%로 추산된다. 경찰에도 299개 기관 중 272개 기관에 직장협의회가 만들어져 11만7천여명 중 4만9천여명이 가입했다. 불모지였던 소방공무원과 경찰공무원의 노사관계 교육 수요가 크다. 올해 소방공무원 대상으로 8차례 걸쳐 500여명을 교육했고 경찰공무원도 경찰직협 출범에 따라 관리자 300명을 교육했다. 올해는 시범운영이다. 내년에 예산을 확보해 단체교섭 등 여러 교육을 할 예정이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허브’ 필요
저소득·취약계층부터 교육휴가 단계적 보장
경사노위, 실태조사 하고 제도화 논의해야”

- 전 국민을 교육 대상으로 확대한 만큼 교육원에서 하는 청소년 노동인권교육도 이전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골격을 만드는 중이다. 1년에 5만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한다. 그런데 최근 5~6년간 지방정부에서 노동인권교육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분야도 중복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똑같은 교재 개발을 서울에서도 하고 부산에서도 한다. 교육원이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허브가 돼야 한다. 내년 가을 무렵에는 청소년 노동인권 박람회를 열어 각 기관별로 만든 교재나 동영상, 교육콘텐츠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공론의 장을 만들 예정이다.”

-교육원 출범 이후 눈에 띄는 변화는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특수고용직을 대상으로 고용노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 10년간 민간부문에 대한 노동교육은 전무했다. 그래서 전 국민 노동교육이 제도화된다면 그동안 이중노동시장 구조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지만, 혜택은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교육생을 모으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무료교육 기회가 있어도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실현할 수가 없다. ‘유급 교육휴가권’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취약계층 노동자들이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급휴가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ILO는 1974년 유급교육휴가협약(140호)을 노사정 3자 합의로 채택했다. 35개 국가가 비준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 우리나라에서 유급 교육휴가권을 어떤 식으로 제도화할 수 있을까.
“미조직·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1년에 단 하루라도 노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유급 교육휴가권을 단계적으로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단축이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규모에 따라 정비례해서 단계적으로 도입됐다면 유급 교육휴가권은 30명 이하 사업장부터 규모에 반비례해 도입하는 것이다. 노사정이 기금을 마련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 성희롱 예방, 직장내 괴롭힘 방지, 노동권 보장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패키지로 묶어서 제공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노동교육을 보는 노사정의 시각 차가 크다.
“노동교육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노동자들이 노조 만드는 권리인데 왜 지원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품고, 또 다른 쪽에서는 노동인권 분야로 축소하기도 한다. 노동교육에 대한 개념과 범주, 누가 비용을 부담할지, 어떤 교육 내용이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동교육 활성화 연구회를 만들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사정의 실태도 파악하고 유급 교육휴가제도에 대해 토론도 해 보면 노동교육에 대한 시각이 확장할 것이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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