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라고 불린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7월19일 2년이 됐다.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고, 가해자 범위가 협소하다는 지적에 따라 개정된 근기법이 10월14일부터 시행된다. 그럼에도 추가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터의 현실과 개선할 점은 무엇일까.


아직도 넓은 사각지대, 추가 법개정 필요해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
 

▲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
▲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변호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한 노동자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직장’이라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이 인권과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지옥 같은 곳이라면 어떨까.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은 이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인권과 노동권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선언이자, 확인이다. 시행 2년이 됐지만 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고 해서 직장갑질을 당해도 되는 것은 아닐진대, 적용에서 제외돼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 원청에게 갑질을 당한 간접고용 노동자도 적용 밖에 있다. 입주민에게 갑질을 당하는 경비원 사례도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이런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 하나, 조직문화를 바꾸고 모두의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직장갑질119로 들어오는 상담사례를 보면 가해자 개인의 특성보다는 그 회사의 경영방식, 사용자가 가진 인권과 노동권에 대한 평소 인식, 그런 것들이 반영된 조직문화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법률 내용이나 법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권이 존중되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지, 조직문화에는 어떤 문제가 없는지를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인권·노동권 존중 교육이 필요하다. 한 번의 교육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이윤보다 사람이 보이는 공간이 되려면 초·중·고 교육과정에 형식적인 인권·노동권 교육이 아니라, 최소한 교과서 한 과목 전체가 그 내용으로 채워진 노동교육이 필요하다.

끝으로 법률이 있어도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하지 않으면 괴롭힘을 신고하고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피해자의 울타리가 돼 줄 수 있는, 직장 내에서 제도적으로 이런 문제를 바꿔 나갈 수 있는 노조가 직장 곳곳에 필요하다. 노조도 내부에 인권국을 설치하는 등 직장갑질 문제에 대한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이 문제에 대해 3년 전부터 고군분투하고 있는 ‘직장갑질119’에 월 1만원의 후원도 꼭 부탁드리고 싶다.

 

‘일터 폭력·괴롭힘 근절’ ILO 190호 협약 비준하자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5명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사업주 친족·제3자도 포함하는 가해자(행위자) 처벌규정 강화하자는 요구가 잇따랐다. 또 직장내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지난 3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문제점이 일정 정도 해소됐지만 법의 안착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대다수 노동자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참거나 퇴사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정받더라도 이후 사측의 인사상 보복이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직장내 괴롭힘 신고대응 과정에서도 근로감독관의 노골적인 사측 편들기로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신고 취하 및 합의 종용 같은 근로감독관의 갑질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노동자 입장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피해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법의 보호를 받기까지 어려운 점이 너무나 많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019년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190호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 및 괴롭힘 근절을 위한 협약’을 채택한 바 있다. 사상 처음으로 국제사회가 일터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괴롭힘에 맞서기 위한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근로계약 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 모두를 협약 적용 대상자로 포괄하고 있다. 신체적·심리적·성적·경제적 위해를 초래하는 행동과 관행, 젠더에 근거한 폭력 등을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국제수준의 노동인권 보호를 위해서 해당 협약 비준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특수고용직, 하청 간접고용 노동자 같은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최근 급증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 노동시장 내에서 종사상 지위에 따른 ‘구조적 괴롭힘’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에 협약 비준이 더욱 시급하다. 협약을 비준함으로써 괴롭힘 보호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는 조치를 병행해 나가야 한다.

또한 직장내 괴롭힘을 뿌리 뽑는 조직문화와 직장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가 적극 보장되고 강화돼야 한다. 적시적절한 ‘사후적 구제방식’ 보완과 함께 ‘사전적 예방조치’로서 직장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직장내 괴롭힘 근절에 대한 조직 구성원들의 인식을 수시로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해자는 웃고, 피해자는 우는 기막힌 현실
정규열 은평구시설관리공단노조 위원장
 

정규열 은평구시설관리공단노조 위원장
정규열 은평구시설관리공단노조 위원장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2년이 지났지만 정작 현실은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신고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직장내 괴롭힘을 적극적으로 근절해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잘못을 깨닫지 못한 채 피해자에게 더욱더 심한 괴롭힘으로 보복하는 게 현실이다.

서울 자치구 산하 지방공기업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돼 자체 징계처분을 받은 직원들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징계라고 판정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가해 직원 3명은 2020년에 실시한 자치구 종합감사(조사)에 따라 문책(중징계) 요구를 받았고, 소속기관 자체 징계위원회 심의 결과 2020년 12월에 각각 파면·해임·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 받았다. 그러나 이 3명의 직원들은 서울지노위에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제기했고, 일부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져 다시 복직했다. 서울지노위 판정에 대해 해당 피해자들과 다수의 직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피해자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며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직원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책(중징계) 요구로 인해 징계처분을 받았으나, 괴롭힘 행위에 비해 징계 수위가 낮다고 판단하는 상황하에서 서울지노위의 결정은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용기 내서 알렸고, 그들의 징계처분에 대해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안정을 위해 감내했다. 또 미래를 바라보며 애써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지노위 결정과 언론의 편파적 보도는 또다시 괴롭힘 피해자들에게는 불안과 공포감을, 가해자들에게는 면죄부를 준다는 사실에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공분하고 있다.

 

지금 제도는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장
 

▲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장
▲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장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하면 폭언·폭행을 떠올릴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번에 노동조합에서 자체 조사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조근조근한 높임말로 제3자가 보기엔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말에 당사자는 상당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나의 인사·평가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내 권력의 핵심은 인사·평가권이고 이는 사측이 쥐고 있다. 조직장에 대한 인사·평가권을 경영진이 쥔 채로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인사·평가권은 조직장에게 위임된다. 따라서 직장내 괴롭힘은 인사·평가권을 쥔 사람에 의한, 즉 위계에 의한 괴롭힘이다. 이는 결국 사측이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견제되지 않는 권력구조에 기인한다.

회사의 대표는 중세 시대의 왕과 다름이 없고, 이를 바로잡는 것을 ‘직장내 민주화’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권력구조를 해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적이라고 믿었던 IT업계조차 이런데 원래 수직적인 구조를 가진 회사는 오죽할까.

하지만 회사에서 인사·평가권은 사용자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는 현실에서 인사·평가권을 견제 혹은 분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요원하다.

근원적인 문제는 미뤄 두더라도 당장 직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어도 직장내 괴롭힘의 신고 및 처리 프로세스만이라도 바로 잡은 것이다. 안 그래도 인사·평가권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신고·조사·처리 권한을 사용자에게 또 쥐여 주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을 신고받고, 조사하고, 처리하는 걸 ‘원래 직장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라는 시각을 가진 사용자에게만 맡겨 두는 게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줘야 한다. 신고·조사·징계 결정까지 노사 동수로 살펴보고 판단할 수 있다면 그나마 견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에 대한 인사·평가권을 가진 사람을 신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국가의 권력은 왕이 가져야 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시민이 권력을 갖는 민주화를 이룬 것처럼, 회사 내 권력을 사용자가 독점해야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직장내 민주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직장내 민주화를 이룰 가장 좋은 방법은 결사를 통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조직문화로 인해 숨도 쉬기 어렵다면 노동조합을 한번 만들어 보라. 적어도 공기가 바뀌는 건 느낄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