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폐기물처리업체 ㅅ기업에서 15년간 일한 이철호(49)씨는 2019년 허리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신우암(소변의 이동통로인 신우에 생기는 악성 종양) 진단을 내렸다. 이씨는 지정·일반폐기물을 태우는 소각장에서 3조2교대로 일했다. 시간당 2~3톤의 폐기물을 태우며 유독가스·악취에 노출될 때가 많았지만 회사는 산업용 마스크를 비롯한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았다. 2019년 10월 수술을 받고 2개월 병가를 낸 이씨는 이듬해 병가 연장 여부를 문의했지만 “일을 그만두든지, 출근을 하든지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일터로 돌아간 이씨는 최근 통증이 다시 심해져 일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는 “다른 신장 한쪽도 물혹이 생겨서 추적검사를 받고 있다”며 “직업병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씨처럼 일하다 암에 걸린 노동자 78명이 집단산재신청을 했다. 앞서 1·2차 집단산재신청을 한 21명을 포함하면 신청자는 99명이다.

급식실 노동자부터 지하철 역무원까지 업종 다양

직업성·환경성암환자찾기119(직업성암119)와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4월28일 열린 ‘직업성 암환자 찾기 운동 선포식’ 이후 5월 한 달간 접수된 노동자들의 집단산재신청 결과를 발표했다.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 78명은 학교 급식실 노동자(28명), 플랜트건설 노동자(19명), 포스코 제철소 노동자(15명), 전자산업 노동자(8명), 지하철 역무원(2명), 화학산단 노동자(2명) 등으로 구성됐다. 폐암이 33명(42%)으로 가장 많았고 유방암 13명(17%), 백혈병 12명(15%), 갑상선암 5명(6%)이 뒤를 이었다. 파킨슨병·루게릭병 같은 희귀질환도 포함돼 있다.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린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근속연수가 최소 11년, 최대 26년이다. 최근 12년간 경기도 수원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노동자 1명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미선 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장은 “고용노동부가 지난 10일 17개 시·도 교육청에 작업환경측정을 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교육청은 무엇을 어떻게 조사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는 상황”이라며 “주먹구구식 대응이 아니라 전국에 동일한 기준으로 대책이 마련되기 위해서라도 노동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감시체계 구축해야”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암으로 확진되면 기본적인 직업력을 확인하고, 해당되는 작업과 암 발생 가능성 여부를 평가한 뒤 자동으로 산재보험체계로 연결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영국 맨체스터대병원의 경우 감시체계 구축을 통해 ‘숨겨진’ 직업성암 환자를 적극 찾아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성암119는 병원 의료체계를 통한 직업성암 감시체계 구축을 포함해 △직업성암 추정의 원칙 법제화 및 적용기준 확대 △건강관리수첩 제도 대상 물질·노출기준 확대 적용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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