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녹산공단)에 위치한 한 도금업체에서 일하는 A씨는 2년 전부터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도 답답했다. A씨는 “염산이 든 통을 수조에 부을 때 일시적으로 숨을 참고 고개를 돌려 작업한다”며 “작업할 때 마스크는 전혀 쓰지 않는다. 보호구 착용에 대해 교육받은 적이 없고 (사업장내) 대형 배기시설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녹산공단 도금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명 중 1명은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염산·황산 다루는데
4명 중 1명 “대처방법 모른다”

19일 금속노조 서부산지회에 따르면 민주노총 부산본부·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를 포함한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녹산노동자희망찾기’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녹산공단 내 38개 도금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93명을 대상으로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공단 노동자들은 도금작업 전 산처리를 위해 염산(24.6%)과 황산(22.2%) 등을 사용했다.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도금 종류는 크롬·니켈·아연 순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노동자 3명 중 1명(30%)은 취급물질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화학물질에 노출되거나 폭발·화재 발생시 대처방법도 4명 중 1명(24.7%)은 “모른다”고 답했다.

안전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위험성과 관련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한 노동자는 26.9%였다. 분기별 6시간 이상의 “안전보건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노동자도 36.6%였다. 공단 내 산처리 업체에서 일하는 B씨는 “산에 노출되면 화상을 입는 등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그 이상 자세한 것은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61.4%가 이주노동자
안전보건표지는 영어·한국어로만

특히 전체 응답자 가운데 61.4%가 타국 출신 이주노동자였는데 이들은 더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언어 장벽 탓이다. 사내에 부착된 안전보건표지는 대부분 영어나 한국어로 표기돼 있었다. 안전보건표지가 이주노동자 출신국 언어로 번역돼 있는지 물었더니 응답자 33.3%는 “없다”고 답했다. 플라스틱 도금업체에서 일하다 그만둔 이주노동자 C씨는 “안전보건표지가 작업장에 붙어 있어도 한국어와 영어로만 돼 있어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며 “그림을 보고 대충 이해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도금업체 노동자들은 다양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피로·현기증·두통·기억력 저하(20.8%)가 가장 많았고 피부 반점·발진(19.8%), 기침 등 호흡기계 증상(16.8%), 시력저하 및 결막염 증상(14.9%), 비염(13.9%)이 뒤를 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특수건강검진을 받아야 하지만 응답자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49.5%만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고 답했다.

녹산노동자희망찾기는 지난 18일 오전 부산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고용노동부에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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