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부산북부지청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열흘간 부산 녹산공단 방사선 사용업체 20여곳을 대상으로 일제점검을 실시했다. 지난해 12월30일 자연상태의 40배가 넘는 방사선 누출사실이 확인된 지 한 달 만에 후속조치에 나선 것이다.

북부지청은 방사선 누출사고를 일으킨 ㅌ사 노동자들과 반경 50미터에 위치한 주변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건강진단도 함께 실시했다. ㅌ사는 2010년 7월에도 방사선을 누출한 전력이 있다. 노동부가 뒤늦게 점검에 나서기까지 녹산공단 노동자들은 방사선 공포에 떨어야 했다.

지난해 3월11일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한국 정부는 방사선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안전하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하지만 방사선을 취급하는 노동자의 건강관리는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관련업무가 노동부와 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 등 3개 부처에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녹산공단 방사선 누출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교과부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달 3일 부산 녹산공단 방사선 누출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2쪽 짜리 조사 결과는 비파괴 검사장비를 운영하는 ㅌ사의 방사선 차폐시설에 틈이 생겨 방사선이 유출됐지만 극소량이어서 인체에는 해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ㅌ사는 지난해 방사선 누출사고 이후 건물외벽에 두께 60센티미터, 길이 25미터의 콘크리트 차폐시설을 설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배전반이 있는 곳에 작은 틈이 생겨 방사선이 다량으로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위원회는 문제가 된 배전반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콘크리트 차폐시설을 다시 설치하도록 조치했지만, 노동자들의 불안을 떨쳐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산 녹산공단 노동자 노동기본권 및 건강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해에 이어 발생한 이번 방사선 누출사고는 정부와 업체의 관리부실이 낳은 예견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녹산공단은 1천500개 업체, 3만여명의 노동자가 밀집해 있다. 이 가운데 10%는 이주노동자들이다. 공단 안에서 대부분 숙식을 해결하며 24시간을 보낸다. 방사선에 노출됐을 위험이 그만큼 더 높다.

대책위는 공단의 35% 가량이 조선기자재 업체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비파괴검사 업무 등에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하고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인 탓에 안전관리는 부실한 편이다. 비파괴검사는 대상물을 분해하거나 훼손하지 않고 방사선 초음파 등을 이용해 손상 여부를 검사하는 업무다. 선박의 용접이나 주조 상태를 확인할 때도 비파괴검사가 실시된다.

지난해 녹산공단 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신상길 민주노총 부산본부 서부산상담센터 실장은 “상시적으로 비파괴검사를 실시하는 업체는 관련 협회에 등록해 방사선 취급업무를 일일이 보고하는 관리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반면 간헐적으로 비파괴검사를 실시하는 업체들은 관리가 되지 않아 노동자들이 방사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실장은 “예컨대 비파괴검사를 하면서 주변 노동자에게 ‘작업장소 30미터 안으로 접근하지 마라’는 경고가 안전관리의 전부일 때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개인 선량한도 기록하는 필름배지조차 회사 관리



비파괴검사 업무가 얼마나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는 지난해 9월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아무개(사망당시 34세)씨 산재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씨는 2001년 우리나라 업계 최고로 꼽히는 방사능 검사 장비업체인 KNDT&I 울산출장소에 입사했다. 2010년 6월 백혈병과 골수이형성이상증후군 진단을 받기 전까지 현대중공업·세진중공업 등 조선소에서 10년간 비파괴검사 업무를 주로 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원자력관계사업자는 방사선작업 종사자와 수시출입자에 대해 피폭방사선량을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사선작업 종사자는 개인선량계(필름배지 등)를 착용하고 주기적으로 선량한도를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정확한 피폭선량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교과부 방사선관리과에서 실시한 김씨의 백혈병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KNDT&I는 작업자가 방사선에 얼마나 피폭됐는지를 알 수 있도록 가슴에 달아야 하는 필름배지를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일괄 관리했다. 원자력안전법에서 방사선 작업 종사자의 선량한도는 연간 50밀리시버트(mSv), 분기 5밀리시버트 미만으로 제한한다. 이런 규제를 지키면 작업량을 채울 수 없어 아예 필름배지를 회사가 보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사선 투과업무는 반드시 두세 명이 같이 작업해야 하지만 김씨는 홀로 작업하는 날이 많았다. 하루 최대 작업량도 50장으로 제한되지만 김씨는 이보다 7배 많은 350장을 하루에 찍는 날도 있었다.

방사선 투과시 안전거리도 확보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선박 하단 블록들의 용접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탱크 안 맨홀을 따라 20미터를 기어들어가 검사한 후 상부로 나와야 하는데, 김씨는 쫓기는 작업시간 탓에 협소한 공간에서 계속 검사를 시행하며 방사선에 노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선박 블록 용접부위는 구조적으로 차폐시설이 불가능하다”며 “고인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그런 공간에 갇혀 작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김씨는 2006년부터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정상 이하로 떨어지는 등 건강이상 증상이 나타났지만 회사는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KNDT&I의 사훈은 '계일(戒溢)'이다. "넘치는 것을 경계한다"는 뜻이지만, 방사선 종사 노동자의 선량한도는 차고 넘쳐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김씨와 함께 일한 노동자 20명 중 4명이 혈액관련 병으로 사망하거나 치료를 받고 있다. 2007년 입사한 조아무개씨는 백혈병으로 산재를 인정받아 요양 중이고, 다른 2명의 노동자는 혈액수치 이상으로 원자력의학원에서 특수치료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교과부로부터 6개월간 영업정지 조치를 받았다. 현재는 기간이 끝나 정상 영업 중이다.



민주노총 "비파괴검사 하도급 금지해야"



방사능 노동자의 안전관리가 이토록 허술한데도 감독당국인 노동부와 교과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방사선 측정과 개인 피폭량 관리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교과부가 관할하고, 사업장 안전관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동부가 맡고 있다. 흉부 엑스레이 등 방사선을 이용한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관리된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한 병원에서조차 장비에 따라 어떤 것은 의료법, 어떤 것은 원자력안전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도 있다.

원자력 관련 통계(2009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4천여개 사업장에 3만7천여명의 노동자가 방사선 및 방사성물질을 취급하고 있다. 원자력안전법은 사업주에 주기별로 개인 피폭량을 보고하고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의 건강보호 방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산안법에 방사선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조치가 있지만 정작 안전관리의 기초가 되는 개인피폭 관리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특수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등 일반적인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가 노동부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비파괴검사 노동자의 건강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교과부 통계(2004년)에 따르면 방사선 피폭량이 20밀리시버트 이상인 56명 중 48명이 비파괴검사원이었다. 더구나 비파괴검사 업무 대부분은 하청업체가 떠맡고 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씨 사례처럼 비파괴검사 하청노동자들은 작업환경조차 안전하게 확보되지 않는 공간에서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방사선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는 “방사선에 대한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3개 부처에 걸친 법·제도를 일원화하고 비파괴검사를 유해위험업무로 지정해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