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20년 넘게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한 40대 김다혜(가명)씨는 지난해 2월 초 구인사이트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보고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에 팝업스토어(임시매장)로 입점한 총판업체 A사에 고용돼 일하기 시작했다. A사는 단시간 근로자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한 뒤 팝업스토어가 열릴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김씨에게 요구했다. 막상 팝업스토어가 열리자 회사는 “일당은 그대로 지급되며 계약서는 형식에 불과하다”며 근로계약을 용역계약으로 전환했다. 팝업스토어가 열릴 때마다 새로 계약서를 써야 했지만 김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입사 초기부터 회사 관리자가 정규직 전환을 언급하며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었던 탓이다. 그런데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근속 1년이 되기 직전에 해고를 통보받았다.

김씨가 해고예고수당이라도 지급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하자 “용역계약에는 해고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는 평소 회사 대표와 직원이 함께 있는 단체대화방을 통해 상시적인 업무지시를 받았다. 회사가 제공한 매뉴얼에 따라 정해진 할인율로 제품을 판매했고, 퇴근 이후 일일 업무보고 형식으로 매출을 보고해야 했다. 김씨는 “한 달치 스케줄을 미리 짜서 보고하고, 판매 제품부터 금액까지 회사의 지시대로 일했는데 제가 어떻게 개인사업자냐”고 울분을 토했다.

노동자를 사업소득세 납부자로 위장하는 ‘가짜 3.3’

김다혜씨처럼 상당한 업무 지휘·감독을 받는데도 개인사업자로 사업소득세(3.3%)를 낸다는 이유로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한 사례는 적지 않다. 심지어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도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도록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다혜씨 같은 사례를 ‘가짜 3.3’이라 이름 붙이고 이들의 권리찾기운동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사용자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노동자를 사업소득세 납부자로 위장하고 노동자성을 박탈하는 문제를 고발하겠다는 취지다. 권리찾기유니온은 ‘가짜 3.3’ 유형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경우(A형) △도급·위탁 등 비근로계약 형식으로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경우(B형) △전문적 노무관리로 노동자성을 은폐당한 경우(C형)로 세분화했다.

이날 권리찾기유니온이 밝힌 10건(4월2일~5월12일)의 제보 사례 가운데 6건이 A·B형이 결합된 형태였다. ‘가짜 3.3’을 통해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대상인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가짜 5명 미만’문제가 뒤섞인 사례다. 전국 109개 매장을 둔 프랜차이즈 B노래주점의 경우 공동대표 중 한 명의 명의로 된 20여개 매장을 모두 5명 미만 사업장으로 신고했다. 4~5년 이상 일한 직원은 승진을 명목으로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변경했고 이를 통해 상시 근로자수를 5명 미만으로 위장한 것이다. 권리찾기유니온은 B노래주점을 포함한 10개 사업장에 대해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청원하거나 고발했다.

“실제 노무제공관계를 바탕으로 노동자성 인정해야”

권리찾기유니온은 기자회견 이후 김씨 사건을 근로자지위확인 ‘1호 진정’으로 서울고용노동청에 접수했다. 하은성 공인노무사(권리찾기유니온)는 “김씨는 사용자가 지정한 매장에서 백화점 영업시간에 맞춰 근무했고 작업도구인 노트북과 업무용 휴대전화를 회사에서 제공받았다”며 “노동부는 형식적 징표가 아닌 실제 노무제공관계를 바탕으로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노동부에 ‘가짜 3.3’ 의심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 시행과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또한 ‘가짜 3.3’ 노동자를 위한 법률구조센터를 이달 내로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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