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희 국회부의장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토론회에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MBC 아침뉴스 프로그램에서 10여년간 일한 방송작가 2명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계기로 방송사들이 상근작가를 직접고용하고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한 방송사들을 적극적으로 근로감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상희 국회부의장·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언론노조는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토론회를 열고 방송작가 노동문제 개선 방향과 과제를 살폈다.

“방송계 ‘무늬만 프리랜서’에게 길을 열어 준 사건”

이번 사건에서 해고된 방송작가를 대리한 김유경 공인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는 “방송계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입증하는 데 이번 판정의 근거들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정이 계약의 형식이 아닌 실제 업무에 따른 근로관계에 집중해 노동자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작가는 2011년 MBC 보도국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했다. MBC 아침 생방송 뉴스에서 각각 한 코너씩 맡아 10년 가까이 일했지만 지난해 코너 개편을 이유로 해고됐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한 두 작가가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임계약서를 썼고 4대 보험에 미가입한 점, 취업규칙이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이들을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정했다.

김 노무사는 “초심 판정은 사용자가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큰 내용들을 근거로 근로자성을 부정했다”며 “작가 업무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작가는 (업무재량권이 있는) 창작자라는 도식에 머물렀다”고 비판했다.

중노위는 2014년에 근기법상 근로자로 판정받은 MBC 제작 PD 사례를 이번 사례와 비교했다. 방송작가에 대한 판례가 없으니 유사한 판례를 찾아 실질적인 근로형태를 판단한 것이다. 작가들이 창조적인 일을 해도 PD나 방송사의 지시에 따라 코너 소재를 찾고 원고를 작성한 종속관계도 고려했다. 근무장소와 시간에 자율성이 없었던 점도 살폈다.

“정부, 드라마 외 방송현장도 근로감독해야”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장은 “그간 방송사들은 작가를 프리랜서라는 도식에 가둬 근로기준법 규제에서 벗어나 저렴하게 부렸다”고 지적했다. 지부는 방송작가가 일하는 방식을 근거로 이들을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창작자로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90년대 이전만 해도 구성과 집필을 주로 맡아 온 방송작가는 최근 들어 섭외·행정에 이르는 핵심적인 일까지 한다. 방송을 연출하는 PD와 함께 방송제작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방송이 송출되기 전까지 모든 과정에서 방송사와 PD가 업무를 지휘·감독한다. 방송 송출시간에 따라 업무 장소와 시간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업무형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김 지부장은 “지금까지 방송사 드라마현장에 대한 정부 근로감독은 이뤄졌지만 드라마 외 현장들은 근로감독이 시행되지 않았다”며 “작가들은 상시적으로 메신저를 통해서도 업무지시를 받기 때문에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해 근로감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방송사들은 근로자로 고용해야 할 인하우스(상근) 작가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며 “방송 관련 법률에 정부가 마련한 표준계약서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어떠한 형태로든 3년 이상 근무한 인력은 정규직 계약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참고해 우리나라 공영방송사도 방송사 비정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 아님 주장하는 사용자가 입증하게 하자”

이번 MBC 작가 부당해고 구제사건은 초심과 중노위 판정이 다르다. 특히 이들은 방송현장의 다른 프리랜서보다 사용자에게 종속된 방식으로 일했음에도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작업지시는 현장에서 구두로 이뤄졌고, MBC가 보도시스템을 바꾸며 노동자성을 입증할 종이문서가 거의 없었다.

김유경 노무사는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법적인 요소들을 고려해 노동자성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들을 수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며 “노동자성 판단 사건에 있어서 사용자가 사건 신청인을 근기법상 노동자가 아니라고 반박하는 방안을 고려할 시점”이라고 제안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법학)는 “대부분의 생산활동이 기업에 의해 이뤄지는 현재의 자본주의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산업혁명 이전에는 일하는 사람이 자본가나 기업가에 의해 일일이 지시·명령을 받지 않아 노동 방식의 독립성이 높았다”며 “산업혁명 이후에는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노동자는 그대로 수행하는 약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생산방식이 변했는데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하지 않는 이전의 인식을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일하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근로자로 추정하고 이러한 추정을 깨뜨리고 싶은 당사자(사용자)가 이를 증명할 책임을 가지게 하는 것이 지금 사회에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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