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올림

반도체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던 김진희(44·가명)씨는 2016년 1월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3차 병원에서 수술을 마친 그는 요양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 왔다. 2019년 2월 근로복지공단은 김씨 질병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했고 그는 승인 전 3년여간 요양급여와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지난 1월 불거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포지사가 김씨에게 지난해 1년 동안 부당하게 취득한 보험급여 1천384만원을 반환하라고 독촉 전화를 걸어오면서다.

김씨는 왜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일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의 사각지대 탓이다. 건강보험공단이 김씨의 보험급여 환수를 결정한 근거는 국민건강보험법 53조1항4호다. 이 규정에 따르면 공단은 업무상·공무상 질병·부상·재해를 인정받아 보험급여나 보상을 받게 되는 때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이중 수급을 막기 위한 조항이지만 산재 요양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됐다. 김씨가 지난해 항암치료를 받은 요양병원은 산재 미지정 병원인 탓에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요양급여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김씨는 “산재 승인을 받기 전에도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요양급여를 받은 적이 있어 계속 치료를 받아 온 것뿐”이라며 “산재 지정병원에 관한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억울해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단은 부당한 요양급여 환수 결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반올림은 법 개정을 통한 사각지대 해소를 제시했다. 건강보험급여 제한 사유를 업무상 또는 공무상 질병·부상·재해로 인해 다른 법령에 의한 보험급여나 보상 또는 ‘보상을 받게 되는 때’가 아닌 ‘보상을 받은 때’로 규정해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기타 사유로 산재 요양급여를 받지 못한 경우는 급여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가권익위원회)는 2007년 요양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 산재 노동자에게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관련 법 개정과 지침 신설을 권고했다. 하지만 제도개선은 10년이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