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란 공인노무사(반올림 상임활동가)

너무도 억울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렵게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노동자에게 건강보험공단은 산재신청 이전에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은 비용을 뱉어 내라고 하고 있다.

이런 피해를 당한 분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여성노동자다. 열아홉 살부터 시작해 12년간 야간노동을 수반하는 교대근무를 했다. 그 과정에서 방사선, 여러 화학물질에 노출돼 일하다 겨우 33세 나이에 암을 진단받았다. 이후 반올림에 의뢰해 2019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고 교대근무·방사선·화학물질 노출이 인정돼 지난해 8월 산재 승인 처분을 받았다.

다만 2015년 8월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바로 산재신청을 한 것이 아니라, 4년이 지난 2019년 12월에 신청한 것이어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소멸시효 제도(요양급여의 경우 3년의 소멸시효를 가진다)에 따라, 2016년 12월 이전 기간의 요양비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가 없게 됐다. 암을 진단받고, 그것을 산재로 의심해 입증자료를 모으고 산재신청을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회적 뒷받침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3년이라는 시효는 짧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짧은 시효로 인해, 산재로 적용받지 못한 요양비가 있다는 것은 큰 문제점으로 남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시효가 지나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는 기간(2015년 8월~2016년 9월)에 들어갔던 요양비를 환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천안지사는 근로복지공단과 사업주가 결국 시효가 지났다고 책임지지 않으면 재해자에게 청구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효가 지나 산재보험 처리가 안 되는 것도 억울한데,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거기에 더해 건강보험으로 처리된 비용을 토해 내라니, 과연 이것이 복지일까.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상호 호환성이 부족해 벌어지는 제도상 허점을 재해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입법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산재보험법 90조의2 1항에서는 산재보험 요양급여나 재요양을 받은 사람이 요양 종결된 후 2년 이내에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를 받은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그 요양급여 비용 중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한 금액을 지급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유추해석해 보더라도, 결국 두 공단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이지 재해노동자에게 전가할 문제가 아니라고 보인다.

다만 이 조항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산재보험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때 그 책임은 국가가 져야지, 재해노동자가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 조항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가 시행하는 사회보장 제도로서 사회보험 원리에 맞게 말이다.

과거 자료를 보니 이미 입법 시도가 있었다. 2007년 12월 당시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보건복지부에 “산재 환자에 대한 요양급여지급 제도개선” 권고안을 냈고 보건복지부는 이를 수용한다고 했다. 이 개선방안은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재정으로 보상 또는 배상을 하고 보험가입자 및 피보험자에게 요양급여를 부담시키지 않도록 하는 사회보험의 취지, 사업주와 산재근로자 모두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 소정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 점, 국민건강보험법에 대한 산재보험의 특별법적 성격 등을 종합해 보면 업무상재해로 인한 요양이 단지 산재요양이 종료됐거나 산재보험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사회보험이익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본질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산재보험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 요양은 건강보험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핵심 골자였다.

당시 이 안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도록 권고했으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통과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산재노동자들은 건강보험공단의 부당한 환수조치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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