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는 지난 1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농·어촌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주노동자 속헹(30)씨가 지난해 12월 한파의 날씨에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일이 계기였다. 사업주가 기숙사로 신고한 주거시설을 고용허가 전에 정부가 현장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기숙사 시설 기준도 개선했다.<표 참조>

정부 대책은 앞으로 속헹씨 사망과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31일 <매일노동뉴스>가 정부 대책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짚어봤다.
 

“가설건축물 전면 금지해야”

고용노동부가 1월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을 금지하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게 했다. 3월 추가 대책을 발표하며 올해 9월까지 고용금지 유예기간을 뒀지만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을 금지하는 기조는 유지하고 있다.

농지 위에 지어진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 숙소는 원래 농지법 위반 소지가 컸다. 농지법상 농지를 농사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면 시장·군수에게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지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는 창고 용도의 ‘농막’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제공하는 일도 빈번했다. 컨테이너와 같은 가설건축물을 짓고 축조 신고를 하지 않아 건축법 위반 우려도 있었다.

따라서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농지법·건축법을 위반했던 그간의 관행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가설건축물 숙소를 완전히 배제한 것이 아니다. 농장주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가설건축물축조 신고필증’을 받고 정부가 현장 점검을 마치면 가설건축물이라도 이주노동자 숙소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노동계는 이 부분에 정부 대책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설건축물을 이주노동자 숙소로 사용하는 것을 전면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도 건축법상 가설건축물은 상시주거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사건 대책위원회’의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가설건축물은 말 그대로 재난과 같은 임시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 화재에 취약해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노동자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노동부가 가설건축물을 기숙사로 허용하는 문제는 그간 현장에서 관행으로 여겨지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사업주가 일정한 금액을 숙식비로 징수하도록 지침을 만들어 놓고 가설건축물을 묵인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며 “국토부 유권해석을 받아들여 가설건축물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속헹씨 사망 사건으로 이주노동자 주거권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도 나섰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사회단체와 이주노동자 숙소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윤미향 의원실 관계자는 “(가설건축물 기숙사 사용을 금지하자는) 노동계 요구에 공감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 주거권 신장을 위해 현장을 검증하고 해외사례를 연구해 정부에도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을 포함한 관련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주들 “유예기간, 금융 지원 필요해”

농민들은 정부 대책이 농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가설건축물을 전면금지하기 어려운 것은 농업단체 반대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가 노동력 수요로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도 이주노동자 주거권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정부 책임도 강조한다.

30개 농·축산 단체가 모인 한국농축산연합회는 1월 “대부분의 외국인 고용 사업장은 가설건축물 외 숙소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고용을 불허한다는 정부 방침은 농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2월 노동부 앞에서 이주노동자 숙소 기준을 강화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포천시 시설채소연합회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임대업자들이 이주노동자에게 방을 빌려주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농업 특성상 작업장과 숙소가 멀리 떨어지면 안되는 문제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농사 규모가 작은 임대농들은 당장 농가주택을 짓거나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된다”며 “농민들이 합법적인 숙소를 준비할 수 있도록 가설건축물 금지 유예기간을 2년 정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농촌 빈집 리모델링을 지원하고 공공이 관리하는 기숙사 모델을 마련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현장 요구를 수용해 농장주를 지원하는 계획도 발표되고 있다. 경남 밀양시는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농가에 임대 보증금 명목으로 저리로 3천만원을 융자할 계획이다. 연이율은 1%로 시중 금리보다 낮다. 현재 시에는 817명의 농업 이주노동자와 388개의 농가가 있다. 밀양시 관계자는 “정부가 비닐하우스 가설건축물 금지 대책을 발표하면서 현장 농민들의 자금 지원 요구가 있었다”고 전했다. 밀양시는 농촌주택을 개량하는 데도 시설자금을 지원한다. 경기도도 올해 1월 시행한 도내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경기도형 농어촌 외국인노동자 숙소 모델’을 발굴할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25일 이주노동자 주거개선 대책을 포함한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했다. 노동부 대책에 맞는 주거환경을 확보하기 어려운 농민에게 자금을 지원한다. 총예산 규모는 50억원으로, 약 500개 농가에 지원할 예정이다. 지자체와 절반씩 사업비를 부담하고, 구체적인 사업 내용은 지자체 수요조사를 거친 뒤 확정한다.

노동계도 정부지원 숙소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집단 기숙사 형태가 아니라면 지자체가 관리하는 이주노동자 공공기숙사도 가능하다고 본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활동가는 “사업주 주장대로 농촌에서 숙소 임대가 어렵다면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기숙사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며 “사업주 단체는 차량을 마련하는 등 출퇴근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용허가제로 이익을 누려 온 정부와 사업주들이 책임을 나눠질 때라는 얘기다.

“ILO 권고에 맞는 기숙사 기준 만들자”

정부는 지자체에서 신고필증을 받은 가설건축물에 대해 현장 검증을 실시할 계획이다. 가설건축물을 일부 허용한 방침을 보완한다는 취지다.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정보 제공에 관한 규정’ 고시도 개정해 숙소 시설기준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 실당 거주 인원을 15명 이하에서 8명 이하로 바꾸고 환기·소방시설 기준 등도 개선한다. 사용자가 작성하는 ‘외국인(근로자) 기숙사시설표’에 주거시설 형태와 숙소 설치금지 장소도 구체적으로 기입하게 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규정의 근거가 됐던 근로기준법 시행령 54조부터 58조의2까지도 개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행령 개정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기숙사 기준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온다.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근로자 숙소에 관한 권고(Workers’ Housing Recommendation)를 참고할 수 있다. ILO 권고에는 공간마다 주거 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침실의 위생 수준과 개인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했다. 현행법과 달리 욕실에 대한 세부기준도 제시한다. <표 참조>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국제적으로 제시된 기준을 최소한으로는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현행 근로기준법과 정부가 예고한 서식개정안은 국제기준에 한참 모자라다”고 지적했다.

손 활동가는 “이주 여성노동자들은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기도 해 이주노동자 숙소는 생존의 문제와 결부돼 있다”며 “이러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안전하게 주어져 있는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근본대책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보다 나은 숙소로 사업주끼리 경쟁해야”

이주노동자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손보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를 제한하는 정책이 문제로 제기된다. 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 권리가 주어지면 사업주 간 경쟁이 발생해 더 나은 주거·노동 조건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다. 고용유지를 위해 사업주가 스스로 개선책을 찾도록 유인할 수 있다. 노동자는 근로계약과 실제 조건이 다른 사업장을 피할 수 있다.

이주단체들은 현행 고용허가제를 ‘노예제’와 다름없다고 비판해 왔다. 고용허가제가 취업 알선 브로커를 막는 순기능을 했지만, 일터에 대한 정보와 자유가 이주노동자와 사용자·정부 간 지나치게 불균형하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바꾸거나, 고용계약을 연장하고 재취업 특례로 입국할 때 사용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사업장 변경 횟수도 3년 동안 3회(재고용시 최대 2회)로 제한한다. 근로계약은 노사가 동의해 체결하고 해지하는 데 기초하지만, 계약연장을 빌미로 임금체불이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업주도 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려면 정부 고용복지센터에 신고하고 변경 사유를 증명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가 마주하는 언어적·문화적 장벽도 높다.

정영섭 활동가는 “고용허가제는 고용상황과 체류비자가 연계돼 있어 일을 하는 상태에 놓여야만 체류비자자격을 유지해 줄 수 있다는 원리”라며 “이주노동단체들은 체류비자(노동비자)를 먼저 주고 비자 기간 내에서 이주노동자가 구직활동과 사업장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노동허가제를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은 변화가 더디다. 사업장 이동 자유를 전면 보장하라는 이주단체 요구에 대해 지난 3월 근로여건 개선 방안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 고시’ 개정을 예고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불법 가건물을 숙소로 이용하면 사업장을 즉시 변경할 수 있게 했지만, 횟수에 산입되지 않는 사업장 변경 사유를 확대하는 데 그쳤다. 정부의 고시 확대 방침은 이주노동자가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피해를 사후적으로 처리할 뿐, 예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최정규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를 겪은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있었다면 어려운 범죄 입증 과정을 거치기 전에 사업장에서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지위와 상황을 악용하는 사업주를 막으려면 사업장 변경 자유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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