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여성에게 화장실이 남성과는 다른 의미의 공간이라는 것을 기존과 다르게 ‘감각화’하게 된 것은 10여년 전 기억 때문이다.

당시는 연구소 서울 사무실이 구로역 근방에 있었다. 열띤 회의를 마치면 매우 늦은 시간까지, 때로는 새벽까지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뒤풀이도 일처럼 할 때였다. 사무실 인근 구로역 가까이 가격도 싸고, 맛 좋기로 입소문 난 족발집이 있었는데 여성 활동가들은 그곳에 방문하기를 꺼렸다. ‘족발을 싫어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화장실이 문제였다.

‘잠깐 용변을 보는 공간이 집처럼 편안할 수 없는데, 너무 깔끔 떠는 거 아냐’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화장실을 다녀온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화장실이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용변을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안심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로 안전한 장소여야 한다는 것으로 말이다. 그 이후부터 내가 앞장서서 식사나 뒤풀이 장소를 찾을 때나, 수련회나 엠티 장소를 선택할 때도 우선 순위를 여성 화장실로 두게 됐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일회적으로 방문하는 화장실이 아닌, 자신의 일상과 삶을 영유하는 공간인 일터에서 여성노동자의 화장실은 어떠한가.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해 여성노동자 899명의 설문조사와 민주노총 소속 14개 사업장의 면접·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 토론’에서 발표했다.

심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인간이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자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라고 하지만, 특히 ‘잘 싸는’ 문제에 있어 여성노동자들은 남다른 억눌림과 제한을 자신의 일터에서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를 통해 적지 않은 여성노동자들이 화장실 이용 문제로 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하고, 식사를 거르거나, 밥도 양껏 먹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확인됐다. 이런 문제는 특히 화장실 이용이 어려운 여성노동자 집단이 더욱 심각했다. 음식물 섭취를 제한한 경험이 74.5%, 수분 섭취를 제한한 경험이 83.1%였다. 이들 중 ‘이동·방문’군에 속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절반 이상(57.76%)이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었다. 원할 때 화장실을 가지 못해서(46.76%), 비위생적 시설(41.73%)로 인해 건강의 우려를 가지고 있었고, 안전 문제(62.28%)를 경험하고 있기도 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되는 주요한 요인은 업무 특성에 따라 우선 순위의 차이는 있었으나 △인력 부족 △휴게시간 미보장 △임금·고용불안 △업무 평가 등 노동강도와 직결돼 있었다. △여성의 특성에 맞춰 변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환경·시설의 미비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조직 문화 △여성질환에 대한 왜곡도 함께 확인됐다. 이러한 화장실 이용 제약으로 여성노동자들은 대표적으로 알려진 방광염 외에도 출혈성 방광염, (급성) 신우신염, 하혈, 과민성방광 문제, 월경 중 곤란함 같은 질환과 증상 등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

얼마 전 미국의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한 한 유망기업의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화장실 이용조차 남성 관리자에게 허락을 맡아야 하고, 단말기 기록에 화장실 이용 횟수가 명시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어느 특정기업만의 극단적인 조직문화로만 읽히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사회의 화장실을 둘러싼 권력관계의 단적인 모습이 아닐까 한다. ‘닭장 같은 80센티미터’의 콜센터 안에서 여성노동자들이 화출(화장실 출발), 화착(화장실에서 도착)을 보고하고, 물 마시는 것조차 보고와 감시의 대상이 되는 현실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기사에 ‘저거 과장 아니야, 나도 콜센터 2년 근무하고 병 걸려 나왔음’이라는 댓글이 달리고, 이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그렇다.

지난 12월 경기도 포천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 고 속헹 씨의 죽음을 계기로 결성된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 소통방에도 위 토론회 소식이 알려지자, 농지 한가운데 위치한 간이 화장실을 소개하는 몇 장의 사진과 적나라한 현실이 공유됐다. 이주민 쉼터에 방문하는 여성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제때 화장실을 못가서 (2시간마다 쉬라든가, 쉬는 시간이 점심시간 이외에 없거나, 또는 화장실이 멀리 있어서) 방광염이 신장염으로 악화해 찾아온 분들이 많다는 얘기였다.

여성노동자의 화장실은 ‘인간’의, ‘일하는 사람’의 존엄 문제다. 생명·건강·안전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다뤄져 왔다. 꺼내 놓고 말하기 부끄러워 ‘모두’의 문제로 공론화하는데 주저해 왔다. 그러나 이제 말해야 한다. 터져 나온 이야기에 힘을 싣어야 한다. 화장실은 노동환경이며, 노동기본권의 하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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