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회사 전체가 문을 닫은 것도 아니고, 공장 한 곳이 폐업한다고 해고되는 것은 부당합니다. 심지어 회사는 공장 증설계획까지 있습니다. 당장 정식 전환배치가 어려우면 당분간은 허드렛일이라도 하겠다는데 26명 정도 일할 자리가 없다는 것은 억지라 생각합니다.”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효성그룹 본사 앞에서 효성첨단소재 경주공장 노동자 정해정씨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50대인 정씨는 “이 나이에 직장을 잃으면 코로나19 시국에 어디서 뭘 하겠냐”고 되물었다. 정씨는 경주공장 노동자 대부분이 50세 이상이라고 전했다.

효성첨단소재 경주공장 노동자들은 지난 21일부터 효성그룹 앞에서 해고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해고예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 26명이 2~5일 단위로 8명씩 돌아가며 피켓시위를 하는 방식이다. 농성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온 이들은 서울에 숙소도 잡았다. 효성첨단소재 경주공장 노동자들은 지난달 회사에서 “2021년 1월28일부로 정리해고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주공장 노동자들은 타이어 내장재인 스틸코드 생산업무를 한다. 회사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라는 이유를 댔다. 회사는 지난해 6월 이미 공장가동을 중단했다. 직원들은 급여 일부를 받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경주공장 노동자 50여명 중 26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명예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노동자들은 효성노조 경주지부·화섬식품노조 울산지부 효성언양지회를 비롯한 2개 노조에 가입돼 있다.

국내 경기회복 위해 국내공장 증설?

노동자들은 회사의 정리해고 통보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효성첨단소재가 다른 지역에 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해고 대신 노동자들을 다른 지역 공장으로 전환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효성첨단소재는 울산공장에 613억원을 투자해 2021년 상반기까지 신소재 ‘아라미드’ 생산라인 증설을 완료하기로 지난해 5월 울산시와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기존 1천200톤 수준의 생산규모를 연간 3천700톤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당시 효성첨단소재는 “당초 베트남 공장 건설을 검토하다가 국내 경기회복과 핵심소재의 생산기지는 한국에 둬야 한다는 판단으로 울산공장 증설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2019년 8월에도 효성첨단소재는 “2028년까지 탄소섬유 산업에 총 1조원을 투자해 기존 2천톤 규모(1개 라인)인 생산규모를 연간 2만4천톤(10개 라인)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으로 전북도·전주시와 협약을 맺었다. 전주공장을 증설하겠다는 계획이다.

노동자들은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이 2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2심 선고를 앞두고 전주공장 협약을 했다”며 “재판에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고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해 ‘면피용’으로 국내에 공장증설 약속까지 했으면서 같은 법인 노동자는 해고했다”고 지적했다.

“해고하고 임금 낮은 신입사원 뽑으려 하는 것 아니냐”

노동자들은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했다. 효성첨단소재는 지난해 3분기 9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분기 적자 400억원에서 흑자 전환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현준 효성 회장은 2019년 연봉이 45억1천700만원이다.

정씨는 “임원분들 몇 분만 그렇게 많이 안 받아가더라도 26명 노동자의 정년까지 다 보장할 수 있다”며 “25년 넘게 일했는데 납득되지도 않는 ‘경영상 이유’로 나가라고 하니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노동자 A씨는 “노동자 중에는 아직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분도 있고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분도 외벌이 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많진 않지만 임금도 올려 줬으면서 해고라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증설되는 공장에는 인건비가 저렴한 신입사원을 뽑으려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효성첨단소재 관계자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도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데 대해 책임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남은 기간 희망퇴직과 관련해 노조, 경주공장 직원들과 성실하게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악친 코로나19 위기로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 악화까지 겹치면서 회사는 불가피하게 정리해고에 착수하게 됐다”며 울산·전주공장 증설과 관련해선 “사업이 다른 내용”이라고 말했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정리해고에서 경영상의 필요성은 통합된 하나의 사업체 사업을 기준으로 본다”며 “경주공장에서 설령 손실이 있었더라도 울산공장·전주공장을 비롯한 (같은 법인) 다른 공장에서 수익이 발생했는지, 그래서 사업 전체적으로 구조조정 필요성이 있는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증설계획이 있다는 것은 사업이 더 확장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정리해고 이전에 이미 증설계획이 있었다면 노동자를 증설된 곳으로 전환배치하는 것이 해고회피 노력으로, 사용자가 당연히 취해야 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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