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지난 9일 본회의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을 의결했다. ILO 기본협약과 관계없는 근기법에는 노동시간 관련 내용이 담겼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재계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내용이다. 근기법 개정안 통과의 의미를 들었다.


탄력·선택근로, 특별연장근로 확대는 재벌 위한 선물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
이정훈 민주노총 정책국장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경영상 사유로 확대했다. 이제 국회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6개월 확대,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3개월 확대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장시간 과로노동을 확대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무력화하는 정책과 법률 개악이 이어졌다.

탄력근로 등 변형근로 도입 시 추가적 총노동시간은 제한이 없다. 정부와 국회가 그렇게 선호하는 유럽이나 일본 등 외국은 불규칙 집중노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탄력근로제를 운용하면서도 총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일본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늘어날수록 일반적인 경우보다 총노동시간을 추가 단축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를 통과한 근기법 개정은 이미 연장근로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상시화되어 있는 한국 상황에서 탄력근로제를 제한하기는커녕 대문을 더 활짝 열었다. 최장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근기법 개정으로 불규칙노동이 확대할 우려도 커졌다. 3개월 탄력근로제는 ‘일별’ 노동시간을 합의해야 한다. 신설된 3개월 초과는 ‘주별’ 노동시간만 정하면 되고, 2주 전까지 알려주면 된다. 그마저도 업무량 급증 등 사유가 있으면 근로개시 전까지만 노동자에게 알려주면 된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시간을 예측하지 못하게 된다.

건강권 보호조치는 실효성 없고 되레 심각한 건강권 침해가 우려된다.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도 그 해석이 1일(24시간) 단위가 아니라서 실효성 자체가 의문이지만, 이마저도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예외를 뒀다.

근로자대표제를 악용하는 사례도 예상된다. 근로자대표는 부여된 권한이 상당히 많지만 그 정의나 선출방법 등을 정리한 법안이 없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대표를 지정하고 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면 미조직, 비정규직, 여성, 청년들에게 피해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확대한 점은 심각하다. 이 제도는 1주, 1일 노동시간 제한이 없다. 연구개발 업무에 한정한다지만, 연구개발 업무의 범위는 기업이 갖다 붙이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다. 최장노동시간, 산업재해 사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2위를 달리는 한국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하는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팔지 마라
이지현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이지현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이지현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

 

근기법 개정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6개월로 확대되고,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이 3개월로 확대됐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은 확대는 지난 2019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한정애 의원안이 토대가 됐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합의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노사 당사자 간 합의 없이 국회에서 처리될 경우 단위기간이 1년까지 늘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고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한국노총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도입하지 못하도록 △노사합의를 통해 도입하도록 했고 △노동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하도록 했으며 △임금보전을 위해 보전수당 또는 할증임금을 주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 근기법 개정에서는 사회적 합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신상품 또는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을 3개월로 확대하는 안이 포함됐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 보완책으로써 최소한으로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고 최대한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했던 노사정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통해 도입한다”고 명시했다. 그 일환으로 노사정은 지난 10월16일 ‘근로자대표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추가했다.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절차 및 방법, 지위 및 활동 보장에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근로자대표의 선출과 독립된 의사결정, 근로자대표의 지위와 활동을 보장하도록 마련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근기법 개정에서는 근로자대표제도 개선 관련 내용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차후 반드시 입법보완이 진행돼야 한다.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선택적으로 취한다면 향후 사회적 합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사회적 합의를 팔지 마라.

 

법개정 취지 달성을 위한 보완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홍종선 한국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

홍종선 한국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
홍종선 한국경총 근로기준정책팀장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정법은 지난해 2월 노사정 합의의 산물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6개월로 늘어난 것과 연구개발에 한정됐으나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이 3개월로 확대된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조속히 수정, 보완돼야 할 점도 많다. 우선 1개월 초과 선택적 근로시간제에 대한 11시간 연속휴식 획일적 부여 강제는 재개정이 필요하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개별 근로자 선택에 따라 시간이 활용되는 제도다. 근로자가 근로할 시간과 하지 않을 시간을 선택하면 된다. 산업이나 업무의 특성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11시간 휴식을 획일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없다. 월 단위 평균 주40시간 초과부분에 대해 가산임금을 지급토록 한 것도 문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한 달이든, 세 달이든 정산기간 전체의 근로시간 총량 범위 내에서 일정기간 집중근로를 하면 잔여기간에 근로시간을 줄여 휴식을 부여해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정산기간 만료 시에 총근로시간을 정산해 법정근로시간 총량을 넘는 연장근로가 있으면 비로소 가산임금을 지급하면 된다. 월 단위 연장근로수당 정산으로 잔여기간의 휴식 부여에 더해 집중근로기간의 가산임금까지 이중 부담을 강제할 필요가 없다. 이 밖에 3개월 초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11시간 연속휴식 부여와 관련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예외사유를 지난해 노사정 합의에 맞게 규정해야 하며, 중간퇴직자 등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규정에 대한 남용 방지책을 마련하는 등 제도 안착을 위한 과제들이 많다. 그나마도 이것은 산업현장의 근로시간 애로 해소라는 개정법의 취지 달성을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향후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IT, SI(시스템통합) 산업을 비롯해 필요한 모든 분야에 3개월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활용될 수 있도록 적용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재량 근로시간제, 고소득·전문직 이그젬션,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등 다양한 유연근무제도들이 체계적인 논의를 통해 조속히 입법화·제도화돼야 한다.

 

장시간 노동 국가에서 탄근제 운용은 창피한 일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연구교수

 

우리나라처럼 초장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에서 탄력근로제가 있어야 하는가. 주 68시간 노동시간 체제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로 하다, 52시간 체제에서는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렸다. 노동시간단축을 추진한다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졌다. 주 52시간제가 안착하는 방해요소로 작동할 것이다.

탄력근로제는 사용자 처지에서도 효용성이 높은 제도라 보기 어렵다. 과거 고도성장을 할 때 필요했던 낙후된 모델이다. 장시간 노동에 의존해 굴러가야 할 산업영역이나 직무·직종이 있다면 이들에 한해 적용하는 방안은 생각해 볼 수 있다. 꼭 장시간 노동이 필요한 직무인지, 악용방지 조치는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면 얘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용자에게 엄청나게 매력적인 제도도 아닌데 목을 매는 이유,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근로감독을 거의 하지 않는다. 사업장 노동시간 점검이 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노동시간 단축·주52시간제 규율을 무너뜨리는 기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5명 미만 사업장은 노동시간 규제 적용대상도 아니다. 이 같은 조건을 가진 나라에서 탄력근로제를 운용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확대했다는 소식은 믿고 싶지가 않았다. 정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말도 안 되는 조항을 집어넣으려 했고, 국회는 이를 빼면서 노동계 편을 들어주는 척했다. 그러더니 실제로는 사용자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확대했다. 사용자들은 국회 통과 노동관계법을 두고 불만을 토해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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