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안이 12월 임시국회 회기에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선 입법 후 비준’ 방침에 따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을 개정했지만 여당은 이후 단계인 비준안 처리에 소극적이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없고 노동시간 유연화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시국회 비준안 처리 사실상 물 건너가

5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임시국회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안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12월 임시국회는 8일 종료한다.

정부는 국내법을 먼저 정비하고 ILO 기본협약을 비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지난해 6월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이듬달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기본협약 미비준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에 해당해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법 개정을 추진했다. 국회는 지난달 9일 본회의를 열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처리한 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함께 통과했다.

국회의 시계는 이후 멈췄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는 정부가 내놓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비준동의안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비준동의안 △강제 또는 의무 노동에 관한 협약(29호) 비준동의안 등 3건이 계류돼 있다. 지난해 11월30일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비준안을 논의했지만 “환노위의 (노동관계법) 심사 결과를 보고 심사하겠다”며 처리를 뒤로 밀어 놨다.

국방위서 병역법 개정안 처리도 못 해
여당 처리 의지 실종

외통위 여야는 노조법 등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다음 핑계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찾고 있다. 국방위에는 4급 보충역 대상자에게 복무선택권을 부여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거나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 대상인 보충역이 원하면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ILO 강제노동 협약 위반 소지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제출했다. 지난해 11월19일 국방위 법률안심사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가 있었는데 여야 이견은 없었다. 한류스타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도록 한 병역법 개정안에 밀려 처리하지 못했다. 국방위는 이 회의 이후 협약 비준 관련 병역법 개정안 논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국회 외통위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과 외통위 법안심사소위 개최 등 일체의 의사일정 자체가 협의가 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회기에서 비준안을 논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당 관계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처럼 단독으로 밀어붙여 처리할 상황은 아니라는 분위기가 있다”며 “비준안 처리에 대한 지도부의 강한 의지와 지시가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노동계는 “ILO 기본협약 비준은 없고 노동시간 유연화 개악만 남았다”며 부글거리고 있다. 노조법 등과 함께 개정된 근기법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시간 노동을 묵인·유발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개정으로 평가받는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다분히 의심되는 상황이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청와대와 여당이 진짜 절박했던 것은 ILO 기본협약 비준이 아니라 노동시간 유연화 노동개악이었다”고 말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미디어홍보본부 실장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목표로 노동관계법을 개정하고선 정작 비준안 처리는 손 놓고 있는 정부·여당의 속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더 이상 책임을 방기하지 말고 비준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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