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지난 11월 코로나19 감염을 막으려 배포한 ‘사회복지시설 및 장례식장 방역조치 강화계획’. <서울시>

서울에 위치한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김정선(40·가명)씨는 최근 퇴근 후 동선을 기록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센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절차라는 설명이 담긴 문서도 함께 받았다. 말이 요청이지 사실상 강제였다.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회복지사도 감염이 될까 불안하지만 필수 대면서비스라 계속 일하고 있는 것인데 사회복지사를 잠재적 감염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센터를 방문해 마주치는 사람들은 시설 이용자와 이용자 가족도 있는데 그분들 동선도 공개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서울시가 “퇴근 후 동선기록 작성 및 확진자 발생시 자료 공유(사전 동의)”라는 내용이 담긴 ‘사회복지시설 및 장례식장 방역조치 강화계획’이라는 지침을 내려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장에서는 방역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기보다는 현장 노동자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방역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차 사용하려면 방문장소·이동수단까지 보고해야”

서울시가 내린 지침에는 “방역조치 위반 시설 방문 종사자로 인한 집단감염 발생시 인사조치 권고”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코로나19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시설장의 종사자 관리의무 강화의 일환이다.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는 “업무상 불가피하게 방문한 곳이 알고 보니 방역조치 위반 시설이었고, 불행하게도 감염됐다면 징계 대상이 되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사회복지사 김정선씨는 “센터에는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이용자 분들도 많다”며 “항상 조심하지만 조심해도 모르는 일인데 일하는 사람 탓으로만 돌린다”고 비판했다.

신현석 지부 조직국장은 “확진자 동선은 확진되면 당연히 방역당국에 제공하는 것으로 (퇴근 후 직원 동선기록은) 방역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조처가 아니다”며 “확진자가 발생하면 자료를 공유할 것이라는 개인의 공포감이나 중압감을 갖게 할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신 조직국장은 “실제로 (지침이) 악용되기도 한다”며 “동선 기록을 관리자가 확인하다 보니, 공개되는 경우도 있고 사생활을 가지고 뭐라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지현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은 “장기요양기관들은 지침이 내려오기 전부터 (동선보고·관리를) 하고 있다”며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퇴근 후 시간대를 하나하나 기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방역을 이유로 돌봄노동자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보는 시설은 서울시에만 있지 않다. 경기도 부천 한 요양시설은 방역을 이유로 직원들이 연차휴가 때 방문한 장소와 이동수단 등 구체적 내용을 적게 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종사자들이 엄격히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하는 시기를 감안해 명백히 종사자 과실이 있다면 인사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고 생각은 든다”며 “사회복지시설도 일종의 공공시설로 보는 것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관리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개인 동선기록 같은 정보는) 그 정보가 필요한 사람 외 다른 분에게 공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방역조치 위반 시설’과 관련해서는 “방역당국이 방역수칙 위반을 지적했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방역수칙 위반이 명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곳”이라고 부연했다.

“방역조치 책무 개인에 전가 멈추고
방역지원부터 먼저 해야”주장

코로나19 재난 속 돌봄노동자 책무를 강조하지만 정작 지원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요양시설, 어르신 주·야간 보호시설(데이케어센터), 장애인 복지관, 장애인 주간보호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은 사회적 거리 두기 2~2.5단계로 격상돼도 정원을 축소해 운영을 이어 가는 경우가 많다. 돌봄서비스가 불가피하게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노우정 요양보호사노조 위원장은 “올해 코로나19가 현장을 강타했지만 마스크 지급조차 제각각”이라며 “지급하는 시설도 있고, 지원받은 마스크를 900원에 파는 곳도 있고, 완전 방치하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가 요양보호사 같은 경우는 코로나19로 쉬다 다시 어르신 집에 들어가기 위해 코로나19 미감염 상태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모두 개인 몫”이라고 지적했다. 접촉자로 분류되지 않은 개인이 코로나19를 검사하면 10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신현석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현재 정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별 사회복지기관의 휴관 대책을 내놓고,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요구하는데 이에 대한 추가 인력 배치나 지원은 없다”며 “비대면이 안 되는 서비스를 무조건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방역지침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승은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은 “방역조치 위반 시설을 방문해 감염되면 처벌하는데 방역위반 시설을 관리하는 것은 서울시 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오 부장은 “특히 입소자가 있는 시설은 (코로나19가 발생하면) 퇴소 조치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큰데 관련해 종사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시설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달 요양시설 5천996곳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종사자 대체인력 확보가 되지 않은 경우는 42.2%, 의심환자 격리공간 확보하지 못한 시설은 16.2%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장에서 문제가 된다고 하면 감안해 추가 지침을 내리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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