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 21일 KTX 해고승무원 복직과 관련한 노사합의문에서 “당사자들의 고통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해고승무원들은 2004년 해고된 뒤 무려 12년이 지나서야 철도공사의 유감표명과 복직 약속을 받아 냈다. 승무원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은 길다. 2004년 입사할 당시부터 14년간 정부와 공공기관·사법기관의 농락에 시달렸다.

◇“철도공사 정규직”은 없던 일로=KTX 개통을 앞두고 철도공사(당시 철도청)의 승무업무를 수탁한 홍익회는 2004년 1월 계약직 승무원을 뽑았다. 승무원들은 입사 당시부터 회사 관리자들에게 “철도공사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입사 1년 뒤 승무업무는 새로 생긴 자회사 한국철도유통(현 코레일유통)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철도유통은 2005년 12월 돌연 승무업무 수탁을 중단하겠다고 철도공사에 통보했다. 철도공사에 직접고용될 것으로 기대했던 승무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승무업무는 또 다른 자회사인 KTX관광레저(현 코레일관광개발)가 맡기로 했다.

“곧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진 승무원들은 철도노조에 가입하고 정규직화 투쟁을 시작했다. KTX관광레저로 옮기는 것을 거부했다. 회사와 철도공사는 “자회사 정규직이니까 이것도 정규직화”라고 회유했다. 결국 회사를 옮기지 않은 승무원 280여명이 2006년 5월 해고됐다.

◇노동부는 두 번이나 “적법도급”=KTX승무원들이 철도공사 정규직이 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정부기관의 잘못된 판단은 승무원들을 좌절시켰다.

철도공사와 철도유통의 불법파견 여부를 두 번이나 조사했던 고용노동부는 모두 철도공사 손을 들어줬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남부지청은 승무원들이 해고되기 전에 진정을 낸 사건에 대해 2005년 9월 적법도급 판정을 내렸다. 노동부 판정 결과를 놓고 논란이 확대되고 승무원들이 해고되자 정치권에서도 쟁점이 됐다.

결국 노동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재조사를 약속했다. 이번에는 서울지방노동청이 직접 나섰다. 1년여 뒤인 2006년 9월 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지방노동청 발표가 있기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불법파견”이라는 의견을 낸 터라 승무원들에게 유리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적법도급”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서울지방노동청은 “철도공사와 철도유통 간 위탁계약 자체가 100% 적법도급은 아니다”면서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합법도급에 문제가 없다”고 밝혀 노동계 공분을 샀다.

◇목숨까지 앗아 간 대법원 판결=사법부도 해고승무원들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2008년 11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2010년과 2011년에 나온 1심과 2심은 “KTX관광레저가 실질적으로는 사업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철도공사의 노무대행기관으로 기능했다”며 철도공사와 승무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인정했다. 승무원들이 철도공사로 복직하는 듯했다.

하지만 2015년 2월 대법원이 이를 뒤집었다. 승무원 1인당 임금지급 가처분 승소로 받은 돈 8천640만원을 다시 내놓으라는 명령도 나왔다. 세 살 아이의 엄마인 한 해고자는 재판 결과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5월 발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서는 KTX 승무원 재판이 언급됐다. 이른바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의혹이 일었다.

“철도공사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입사한 노동자들에게 우리나라 최대 공공기관과 정부·사법부는 가혹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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