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가 차고지에 출근하려고 승용차 쪽으로 걸어가다 빙판에서 미끄러져 다쳐도 산업재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승용차 외에는 출근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 출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본 것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4행정부(재판장 조경란)는 경기도 소재 한 버스회사 운전기사인 김아무개(47)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지난 20일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김씨는 2013년 2월 회사 차고지로 출근하기 위해 자택 근처에 주차돼 있던 승용자 쪽으로 걸어가다 빙판에 미끄러졌다. 이 사고로 ‘제4흉추 폐쇄성 골절’ 진단을 받은 김씨는 공단에 업무상재해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가용을 이용해 출근하려다 발생한 사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1심인 수원지법 역시 공단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고법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원고가 자택에서 차고지로 승용차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며 “사회통념상 아주 긴밀한 정도로 원고의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걸어서 차고지로 출퇴근하려면 왕복 2시간이 걸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사고 당일 배차시각에 맞춰 출근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새벽 1시께인 퇴근 시간대에도 집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이 없는 상태였다.

버스회사는 통근버스를 제공하지 않아 운전기사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승용차로 출퇴근을 했고, 회사는 기사들이 차고지에 승용차를 주차하는 것을 허용했다. 회사측은 버스기사들에게 매월 1만4천원의 출근수당을 지급하고 있었고 통근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매월 7천원에서 2만원의 교통비를 주고 있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출퇴근 방법 선택이 원고에게 유보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회사의 지배·관리 아래 업무상의 사유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자가용·대중교통·택시·자전거·도보를 이용한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산재보험법 제37조1항1호다목에 대해 올해 9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내년 말까지 제도를 개선하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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