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노동개혁을 화두로 노사정 합의(?)를 도출하고, 출퇴근 재해를 법제화할 예정이다. 새누리당이 제출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원유철 의원 대표발의)을 보면 산재보험법 법리에 어긋나거나 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일단 개정안은 통상적 방법으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를 출퇴근 재해로 인정한다. 이를 위해 출퇴근을 “취업과 관련해 주거와 취업장소 사이의 왕복 또는 한 취업장소에서 다른 취업장소로의 이동”으로 정의하는 규정을 신설했다(제5조제8호).

즉 개정안은 출퇴근에 있어 두 가지 개념을 상정한다. 첫째는 ‘주거와 취업장소 사이의 왕복’이며, 둘째는 ‘한 취업장소에서 다른 취업장소로의 이동’이다. 전자의 개념은 공무원연금법 및 시행규칙 제14조에 대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3. 10. 8 선고 93다16161 판결)에 부합한다.

그러나 두 번째 정의규정은 출퇴근 재해가 아니라 ‘출장 중 재해’에 포함되는 것이다. 한 취업장소에서 다른 취업장소로 이동이 잦은 직종인 경우 첫 번째 취업장소로 출근하는 행위는 출장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첫 번째 취업장소에서 다른 취업장소로 이동하는 행위는 출장이다. 이는 법원(대법원 2007. 12. 27 선고 2007두3824, 대법원 2002. 9. 4 선고 2002두5290 판결)과 실무부서인 공단의 일관된 태도다. 개정안은 출퇴근과 출장을 혼동함으로 인해 출장 중 재해에 포함되는 업무상사고의 보상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개정안은 ‘근로자의 중과실이 있는 통상적 출퇴근 재해’시 보험급여를 제한하고 있다. 산재보험법 제83조3호를 신설해 '제37조1항3호나목에 따른 출퇴근 재해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근로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재해가 발생한 경우' 보험급여를 제한한다. ‘중대한 과실’로 인한 재해의 경우에는 공무원연금법과 마찬가지로 장해·유족급여의 절반만 지급한다.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법 제62조3항과 이 법 시행령 제53조에 ‘중과실 개념’을 개정안에 도입했다. 기존 공무원연금법 운용에서도 가장 큰 비판을 받았던 대목이 ‘중과실 개념의 자의적 적용’이었다. 특히 공무원연금공단은 옛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제15조3호 '공무수행에 따른 과로와 부주의한 음식물 섭취, 개선이 필요한 생활습관이 경합되거나 기타 요양에 관한 지시 등의 위반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악화된 경우'를 적용해 중과실 처분을 남발했다. 대법원에서 이런 처분의 위법성을 지속적으로 판시하면서 해당 조항은 2008년 10월15일 삭제됐다(대법원 1996. 4. 12 선고 96누716, 대법원 1992. 5. 12 선고 91누13632 판결). 그럼에도 공무원연금공단은 지금도 중과실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현행 산재보험법 제37조는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경우 업무상재해로 간주한다. 다만 제2항에서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서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과실 또는 중과실 유무를 따지지 않는다. 이는 입법적 또는 법리적 측면에서 볼 때 산재보험법의 중요한 근간이다. 중과실 개념 도입은 이런 입법체계를 한꺼번에 훼손하는 것이다.

또한 기여금을 공무원이 부담하는 공무원연금법과 사업주가 전액 부담하는 산재보험법은 입법 취지나 보험료 체계가 다르다. 이를 무시하고 출퇴근 재해에 ‘중과실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앞으로 공무원연금법과 마찬가지로 다른 업무상재해에서도 급여를 제한하는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덧붙여 중과실 개념 도입과 이를 근거로 한 급여 제한조치는 1964년 제정된 국제노동기구(ILO)의 제121호 협약(업무상 재해급여에 관한 협약)에 반한다. 해당 협약은 출퇴근 재해를 산업재해로 정의하고 있는데, 보상수준 감액이 아니라 전체 급부액의 동일성(다른 사회보장제도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노재보험법도 출퇴근 재해 급여를 다른 업무상재해와 동일한 수준으로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 밖에 개정안은 통상적 출퇴근 재해에는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재해보상 책임을 배제한다(근기법 제8장 재해보상 규정과 그 처벌규정 적용 제외). 이는 ‘3일 이내 요양 및 휴업 치료’와 ‘산재보험법 비적용 사업장의 출퇴근 재해’의 경우는 피해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새누리당이 개정안 취지로 명시한 ‘취약근로자 보호’에도 맞지 않는 결과다.

산재보험법 비적용 사업장 근로자는 더욱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개정안의 "출퇴근 경로와 방법이 일정하지 않은 직종의 경우 출퇴근 재해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신설 조항(산재법 제37조제4항)과 결합해 산재보험법과 근기법 모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양산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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