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4일, 최종진 직무대행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와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서울지방법원 뜰에서 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법원이 지난해 11월 개최된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상균(54)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국내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무죄 석방 요구에도 중형이 선고되면서 다시 한 번 노동탄압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재판부 징역 5년·벌금 50만원 선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심담)는 4일 오후 "불법시위를 선동한 피고인에게 큰 책임이 있다"며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수공용물건손상·일반교통방해·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검찰이 주장한 혐의사실 모두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부 시위대가 밧줄로 경찰 버스를 묶어 잡아당기고 경찰이 탄 차량 주유구에 불을 지르려 시도하는 등 민중총궐기 당시 폭력적인 양상이 심각했다"며 "한 위원장이 불법행위를 지도하고 선동한 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고 차벽을 설치한 것이 위법한 만큼 공무집행방해죄나 집시법 위반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는 변호인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심각한 교통 불편을 우려해 최종적으로 집회 금지를 통고한 것은 적법하고 경찰 공무집행 전체가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배척했다.

한 위원장 판결은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노총 간부들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배태선 전 민주노총 조직실장과 조성덕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이 각각 징역 6년과 5년형을 구형받은 상태다.

양대 노총 "정부 비판 목소리 옥죄기"

민주노총은 이날 판결을 두고 "정부의 노동정책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한 공안탄압"이라며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재판 직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공안탄압·노동탄압에 맞서 집회·시위의 자유 쟁취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며 "박근혜 정권 폭압에 맞서 이달 20일 총파업과 9월 2차 총파업, 11월 20만 민중총궐기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내고 "한 위원장에 대한 판결은 정부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이땅 모든 노동자와 노조의 입을 막고 발을 묶겠다는 명백한 노동탄압이자, 군사독재 정권에서나 볼 수 있었던 후진적인 공안탄압"이라며 "사법부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가치를 스스로 내던졌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대회 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례를 들어 경찰 과잉진압 문제와 한상균 위원장 문제를 함께 다룰 태세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집회가 혼란에 빠지도록 폭력을 유도하고 과잉진압을 지시한 정부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과 함께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비판 쏟아져

이번 판결은 국제사회의 강한 비난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노동계는 한 위원장 구속에 이어 검찰이 8년형을 구형하자 강한 논조로 한국 정부를 비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TUAC)는 지난 5월30일 정례회의에서 한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간부들에 대한 기소 철회를 촉구하는 특별결의문을 채택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달 17일 공개한 한국의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서 한 위원장이 불법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참가자들이 조사를 받거나 민·형사적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제인권연맹(FIDH)과 국제노총(ITUC)은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긴급성명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항의서한을 발표했다. 검찰이 한 위원장에게 징역 8년을 구형한 뒤부터 이들 단체는 석방을 촉구하는 국제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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