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세월호 참사 2주기인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 세월호 참사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던 한 유가족이 생존학생을 끌어안고 있다. 뒤쪽에서 단원고 재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진실을 향한 걸음' 행사에 참가한 유가족과 시민들이 지난 16일 오후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등학교 방향으로 행진하던 중 지난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의 사무소 앞을 지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지난 1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2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비를 맞으며 무대를 지켜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신록과 봄꽃을 배경으로 노란색 입간판이 세워졌다. 빈 공간에는 2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가족 곁을 떠난 단원고 학생들과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입간판 뒤로 펼쳐진 하늘은 흐렸다. 봄날의 황사와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겹쳤다. 사람들의 표정도 그랬다.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 초지동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양소 앞에서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식’이 열렸다. 무대에 선 사람들은 “잊지 말자”라는 말을 주문처럼 반복했다. 곳곳에서 터지는 흐느낌이 대답으로 돌아왔다. 이날 행사는 4·16가족협의회·안산시·세월호 2주기 안산지역준비위원회(두 번째 4·16, 봄을 만드는 사람들)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어쩌다 정부는 적이 됐을까?"

무대를 바라보고 정렬된 2천개의 의자에는 금세 사람들이 들어찼다. 서 있는 사람들을 더해 주최측은 총 참가자를 3천여명으로 추산했다.

오전 10시 추모 사이렌이 안산 전역에 1분간 울려 퍼졌다. 묵념을 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자 행사가 시작됐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416 기억 발언’을 했다.

“다시 봄이 왔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2년 전 4월16일입니다.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밝혀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진상조사는 방해를 받아 왔고, 이제 중단될 상황입니다. 20대 총선에서 사필귀정과 국민의 위대한 힘을 확인했습니다. 많은 당선자들로부터 세월호 4대 정책을 약속받았습니다. 약속을 꼭 지켜 주세요.”

"박근혜 대통령님, 꼭 살리겠다 손잡으셨을 때 마주친 두 눈 기억합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당선자 120명 진실규명 약속, 여러분이 증인 돼 달라" 호소


4·16가족협의회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후보자들에게 세월호 4대 정책으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적인 조사 보장 및 특별검사 임명 △세월호 온전한 인양 및 미수습자 수습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요구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이날 기억식에서 “교육자로서 죄책감을 씻을 수 없다”며 “가슴 깊이 진실을 기억하며 아픔을 넘어 반드시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석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내년 이맘때면 적어도 국민에게 왜 국가가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를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하늘로 간 단원고 2학년 3반 박예슬양의 친동생 예진양이 무대에 올랐다. 언니에게 쓴 편지을 읽었다.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의 빈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어 슬퍼. 밤마다 손을 잡고 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아직도 생각나. 아직도 언니 목소리가 들리고, 언니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언니 품속이 너무 그리워. 마지막으로 너무 사랑해.”

예진양은 자주 낭독을 멈췄다. 그때마다 눈물을 훔치고, 코를 훌쩍였다. 많은 사람들이 따라 울었다. 예진양은 편지 말고도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님. 우리 언니·오빠들이 고통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꼭 살리겠다’며 부모님들의 손을 잡으셨을 때, 마주친 두 눈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정부가 우리에게 등을 돌린 적이 됐을까요? 떠난 언니·오빠를 다시 만나는 날 진실을 알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죄스러운 말을 건네지 않게 해 주세요. 부디 멋진 나라의 본보기가 돼 주세요."

안산시립합창단이 '내 영혼 바람 되어'를 불렀고, 성우 김상현씨가 신경림 시인의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를 낭송했다. 가수 조관우의 노래 '풍등'과 4·16가족합당찬의 '어느 별이 되었을까' '잊지 않을게'가 이어졌다. 4·16연대 미디어위원회는 추모영상을 상영했다.

구명조끼 입고도 해맑던 아이들

기억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합동분양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계속됐다. 자원봉사자들이 나눠 준 흰 국화를 희생자들의 영정에 바쳤다. 합동분양소 입구 왼쪽 벽에는 대형 전광판이 마련됐다. 2주기를 맞아 주최측에 애도의 뜻을 전하는 시민들의 문자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전광판에는 “아무도 외롭지 않게 기억할게” “2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짧다” “죽어서도 너희들을 잊지 않을게” 같은 추모문구가 떠올랐다.

꽃을 건네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사진 속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못 이룬 꿈을 이야기하듯 야구공·시집 같은 물건들이 영정 주위에 외로이 놓여 있었다.

합동분향소 출구 쪽에서는 사진전이 열렸다. 수학여행을 전후해 찍은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이 담겼다.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 초기에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밝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사진전 제목(하늘로 간 수학여행)처럼 여행을 떠났다.

유모차를 끌고 헌화를 마친 송아무개(34)씨는 “갓난아이를 키우는데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엄마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꽃을 바쳤다”고 말했다.

기억식은 안산시민 공동선언으로 마무리됐다. 학생·노동자·수녀·주부 등 12명이 무대에 올라 “올해 시 승격 30년을 맞아 안산을 생명과 안전 중심 도시로 만들고, 함께 사는 비전이 있는 지역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외쳤다.

기억식이 끝난 정오 무렵 가랑비가 내렸다. 주최측은 이어지는 행사(416걷기 진실을 향한 걸음) 참가자들에게 노란색 우의를 배포했다. 2천500장을 준비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600장을 추가로 구입했다.

오후 1시30분께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합동분향소 앞으로 모였다. 흰색 천을 휘감아 만든 9개의 대형 인형이 선두에 섰다. 대형 인형은 세월호에 갇혀 아직도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9명의 미수습자를 상징한다. 희생자를 뜻하는 304개의 탈과 꽃만장을 든 시민들이 대형 인형의 뒤를 따랐다.

참가자들은 삼일로를 따라 단원고를 향해 걸었다. 단원고에서 학생들의 넋을 위로한 뒤 화정천을 통해 합동분향소로 되돌아왔다. 5킬로미터 가량 걷는 데 1시간30분이 걸렸다.

합동분양소 인근 화랑유원지 대공연장에서는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 제목은 ‘봄을 열다’였다. 304인의 연주자들이 ‘SOS(save our spring)’이라는 제목의 북 공연을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참가자들은 서울로 이동했다. 이날 오후 늦게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추모문화제(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변함없는 하늘의 눈물 … "20대 국회가 진실 밝히자"

내리다 멈추다 하던 비는 저녁이 되자 폭우로 변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 그리고 1주기 때도 그랬다. 오후 7시가 다가오자 광화문광장에 인파가 몰렸다. 광장은 금세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시위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그릴 때마다 비가 내리는 것을 신기해했다. 추모문화제를 주최한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는 행사 도중 "광장에 1만2천여명이 모였다"고 전했다. 광장에 들어오지 못한 시민들은 인근 세종문화회관 등 대형 건물을 처마 삼아 문화제를 지켜봤다.

추모문화제가 시작되자 사회를 맡은 박진 4·16연대 운영위원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고 한광호 열사의 영정을 들고 무대 앞에 있다”고 소개했다. 이소선 합창단이 노란목도리를 매고 단상에 올랐다. 세월호 추모곡인 ‘어느 별이 되었을까’를 불렀다. 무대 발언이 이어졌다 .

단원고 희생자인 예은양의 아버지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20대 총선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것을 보여 준 선거”라고 운을 뗐다. 그리고 진실규명을 호소했다.

“국회의원 당선자 120명이 세월호 참사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뒤에 계신 그분(박근혜 대통령)도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증인이 돼 약속을 지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전화하고 문자하고, 항의방문을 해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채근해 주십시오.”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진 박주민 국회의원 당선자(더불어민주당·서울 은평갑)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선거운동을 하며 '세월호 사건이 다 끝난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사회의 적폐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세월호 참사는) 모두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당선자는 “20대 국회가 세월호 특별법(세월호진상규명법)을 개정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는 우산으로 가눌 수 없을 만큼 거세졌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송경동 시인은 세찬 빗소리를 뚫고 포효하듯 추모시 ‘세월호를 인양하라’를 낭송했다.

“그렇게 가라 앉아 있는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 전체가 아닌가. (중략) 새로운 국가를,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정의를 인양하라.”

막바지에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한목소리로 읊는 상징의식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아니 국민은 “돈이나 권력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앞설 수 없다”며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목놓아 외쳤다. 추모문화제는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끝났다. 비는 거세게 내렸다. 광화문광장 인근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는 헌화 행렬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이날 세월호 추모행사는 진도 팽목항·인천·제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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