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 팽목항에서 빛바랜 리본들만 쓸쓸히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연윤정 기자

전국을 뒤덮었던 황사가 물러난 뒤라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평일 오후여서일까. 낚시꾼에 섬 관광으로 항상 붐볐다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은 한산하다 못해 황량했다. 철조망에 매달린 빛바랜 노란리본이 바람에 흩날릴 뿐이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석태)가 지난 11일 ‘세월호 인양 모니터링을 위한 실지조사’를 위해 찾은 팽목항은 서늘한 기운에 싸여 있었다. 마치 폐허처럼. 관광객은 참사가 일어나면서 오지 않았고, 추모객 방문도 참사 1년이 넘어서면서 뜸해졌다고 한다.

특별조사위 조사는 팽목항과 세월호가 묻혀 있는 맹골수도를 오가며 이틀간 진행될 터다. 권영빈 특별조사위 진상규명소위원장(상임위원)과 진상규명국 소속 조사관 5명이 파견됐다. 어쩌면 특별조사위가 세월호 선체를 확인하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일인지라 기자들도 여럿 동행했다. 실지조사는 세월호 선체인양을 위해 상하이샐비지가 맹골수도에 설치한 바지선(달리하오·大力號)에 올라 이뤄진다. 특별조사위가 달리하오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10월 이석태 위원장이 선체인양 전 유실방지망 설치를 점검하기 위해 오른 바 있다.

▲ 팽목 분향소에는 295명의 희생자와 9명의 미수습자가 자리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 팽목항에는 미수습자 가족들이 컨테이너로 지은 임시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조사단이 가족들을 만나러 분향소를 지나 임시주택으로 가고 있다. 연윤정 기자


2년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

일행은 분향소를 먼저 찾았다. 295명의 희생자와 9명의 미수습자를 모신 곳이다. 미수습자 영정은 모시지 않았다. “세월호 속에 아직 ○○가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종이가 자리를 대신했다.

“일본기상청 예보상 내일 날씨는 괜찮은 것 같네요. 하지만 바다 날씨는 그때 가 봐야 알죠.”

단원고 미수습자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씨의 말투는 건조했다. 이곳 바다 날씨는 우리나라 기상청보다 일본 기상청 예보가 좀 더 정확하다는 사족이 붙었다. 아마 특별조사위 다음날(12일) 조사를 생각하고 있으리라. 서운함도 토로했다.

“어떤 할머니가 2년이나 지났지 않느냐며 돌아가야 한다는 투로 얘기하더라고요. 할머니 딸이나 손녀라면 그런 소리 들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안 되지’ 하시더군요.”

무덤덤하게 얘기하는 그의 얼굴에 쓸쓸함이 번졌다. 권영빈 상임위원은 “피해자가 욕먹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위로했다. 이씨는 “2년간 내 딸이 바닷속에 있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 못 찾은 가족이"라는 자책의 말이 조그맣게 들렸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컨테이너로 지은 임시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2년간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자리에 같이 있던 진도 주민 이해정씨는 “(미수습자 가족들 마음을) 어느 누구도 모른다”며 “피어나는 꽃을 그랬으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해정씨는 참사 초기부터 2년간 미수습자 가족들 곁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배를 인양해야 진실을 밝힐 수 있습니다”

저녁 조사단이 숙소에 짐을 푸는 동안 팽목항에서 조은화양 부모님을 비롯해 단원고 희생자 진윤희양의 삼촌 김성훈씨와 일반인 미수습자 권재근씨의 형 권오복씨를 만났다.

“우리는 2014년 4월16일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국가는 아무런 말이 없고, 특별조사위는 힘이 없고, 유가족들은 돌아가고…. 미수습자 가족들만 소외돼 있지요.”

조은화양 아버지 조남성씨가 쓸쓸히 말했다. 이금희씨는 “배를 인양해야 진실을 밝힐 수 있다”며 “진실을 위해서는 ‘배’가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진상규명법)이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미수습자나 인양을 언급한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를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배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부터 먼저 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제발 우리 딸 좀 꺼내 주세요.”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금 진행 중인 인양작업이 성공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조남성씨는 “제가 바라는 것은 3주기에는 304명을 다 찾아서 온전한 추모식을 여는 것”이라며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2년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 단원고 미수습자 조은화양 아버지 조남성씨(사진 왼쪽)와 어머니 이금희씨. 연윤정 기자
▲ 상하이샐비지가 세월호 선체인양을 위해 사고해역인 맹골수도에 바지선(달리하오)을 설치했다. 조사단은 이날 바다 사정이 좋지 못해 접안에 실패했다. 연윤정 기자


맹골수도로 출발했지만…

조사단은 12일 이른 아침부터 진도 서망항으로 향했다. 서망항에서 배를 타고 맹골수도의 달리하오에 가서 실지조사를 한 뒤 유가족들이 인양작업을 감시하고 있는 동거차도에 들르는 일정이다. 미수습자 가족 3명과 4·16가족협의회 정성욱 인양분과장·장훈 진상규명분과장·김광배 인양분과 팀장·장동원 진상규명분과 팀장 등 유가족 4명이 합류했다. 전문가로는 임남균 목포해양대 교수(해상운송시스템학부)가 동행했다.

배는 모두 3대로 출발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해경경비정을 타고 따로 출발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특별조사위가 빌린 민간어선 2대를 나눠 타고 출발했다. 출발하기 전 해경이 승객들의 명단과 신분증을 확인했다.

단원고 희생자 장준형군 아버지 장훈 분과장은 “세월호 참사 뒤 달라진 게 있다면 출항 전 신분증을 검사하고 공사장에 들어가기 전 안전모 검사와 음주측정을 하는 것뿐”이라며 “나머지는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이 정도면 (달리하오에) 접안하지 못한다.” 출항하고 10여분 지나 단원고 희생자 정동수군 아버지 정성욱 분과장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먼 바다로 나갈수록 상황이 좋지 못했다. 서망항에서는 잔잔하던 바람과 파도가 1시간 거리의 맹골수도에 가까워질수록 거칠게 출렁거렸다. 집채만한 파도가 눈앞에서 넘실댔다. 해경경비정을 타고 떠난 미수습자 가족들은 접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중간에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배 밑에 세월호가 누워 있습니다”

드디어 학교 운동장만한 크기의 달리하오가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선체를 끌어올릴, 거대한 괴물 같은 크레인을 싣고 있는 달리하오. 하지만 조사단과 일행은 그곳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도 가지 못하는 현실에 조사단과 유가족들은 말을 잃었다.

“안타깝지만 배를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권영빈 상임위원은 침통하게 말했다. 멀리서나마 잠시 달리하오 사진을 찍을 시간이 주어졌다. 일행이 본 달리하오는 조용했다. 붉은 크레인은 거대한 괴물이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접혀 있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세월호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사진을 찍으며 옆에 있는 조사관에게 물었다.

“바로 우리 배 밑에요. 저쪽 달리하오에서부터 여기까지 세로로 누워 있어요.”

갑자기, 알 수 없는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그 순간인 것처럼.

“빨리 들어오십시오. 이제 동거차도로 출발합니다.”

10분 만에 동거차도에 도착했다. 동거차도는 유가족들이 세월호 인양작업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게 산꼭대기에 천막을 쳐 놓고 거처를 마련한 곳이다.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보면 달리하오에서 작업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단원고 생존자 장애진양 아버지 장동원 팀장은 “가족들이 달리하오에 상주하며 인양과정을 보게 해 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며 “하는 수없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진실호’라는 선박을 구입해서 달리하오와 팽목항까지 오간다고 했다.

▲ 유가족들은 선체인양 작업을 감시하기 위해 달리하오에서 가까운 섬인 동거차도 산꼭대기에 천막을 설치했다. 단원고 희생자 최윤민양 아버지 최성용씨가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있다. 연윤정 기자
▲ 동거차도에서 달리하오쪽을 바라본 전경. 육안으로는 달리하오가 보이지 않지만 망원경으로 보면 크레인과 사람들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연윤정 기자

동거차도에서 달리하오를 감시하는 유가족들

조사단은 한참을 거친 오르막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달리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유가족들이 거주하는 천막은 3동이다. 이날 천막 안에서 망원경으로 달리하오를 지켜보던 단원고 희생자 최윤민양 아버지 최성용씨는 “달리하오의 크레인 움직임이나 외부에서 배가 접안하는 것들을 감시하고 있다”며 “낮에는 거의 움직임이 없고 밤이 돼야 크레인이 움직이고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지난해 9월1일부터 이곳에 천막을 설치하고 상주하고 있다. 유가족 3~4명이 매주 교대로 담당한다. 그는 “선체가 인양되는 순간까지 이곳에서 감시할 것”이라며 “인양 뒤에는 선체가 옮겨진 곳에 가서 배 안 수색에 참관하길 원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유가족들은 왜 아이들이 말 잘 듣다가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다. 단원고 희생자 박예슬양 아버지 박종범씨는 “이곳에서 학살의 현장을 확인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에 가까워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묻히게 둘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단원고 희생자 김소연양 아버지 김진철씨는 동거차도를 세 번째 찾았다.

“딸과 저는 친구처럼 정말 친했어요. 너무 딸을 예뻐했죠. 딸을 잃고 나서 너무 힘들었어요. 한동안 맨정신에는 집에 못 들어갔습니다. 울보 아빠로 소문났죠.”

김진철씨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는 “나도 딸 곁으로 가면 딸이 뭐라고 하겠나 싶었다”며 “(동거차도를 찾는)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이날 오후 일행은 동거차도를 뒤로 하고 서망항으로 돌아왔다. 조사단은 팽목항에 돌아온 뒤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나 "달리하오에 오르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금희씨는 “바다 날씨는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2주기가 코앞인데 상황이 어려워서 심난하다”고 속상해했다. 조남성씨는 “인양과정까지 얼마나 어렵겠냐”며 “안타까울 뿐”이라고 전했다.

팽목항 미수습자 가족들과 동거차도 유가족들의 바람은 하나였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 지금 국민들이 잊지 않기를 말이다. 조남성씨는 “7월 말로 예고된 선체인양이 실패한다면 내년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기에 이번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계속 관심을 가져 줘야 배가 올라올 수 있다”고 호소했다. 장동원 팀장은 “아직까지 특별조사위 활동기간 보장을 위한 진상규명특별법 개정과 해경 지휘부 처벌을 위한 특검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며 “국민이 응원해야 선체인양과 진상규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실지조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던 조사단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민후 조사관은 “중요한 시기에 맞춰서 중요한 인양작업을 조사하러 왔는데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며 “꼭 다시 와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빈 상임위원은 “인양과정을 꼼꼼이 살피고 이후 모니터링 계획에 대해 긴밀히 협의할 계획이었으나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며 “이달 말 다시 실지조사를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미수습자와 실종자를 구분해 주세요”

지난 2년간 팽목항을 지키고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은 외롭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유가족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원고 희생자 진윤희양 삼촌 김성훈씨는 “사람들은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을 ‘희생자 가족’으로 똑같이 묶어서 본다”며 “둘의 처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직 사랑하는 아이를, 조카를, 동생을 찾지 못한 것은 큰 차이다.

또 미수습자와 실종자도 구분해 달라고 강조했다. “미수습자는 있는 곳을 아는데 못 찾는 것이고, 실종자는 있는 곳을 몰라 못 찾는 것입니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미수습자와 인양 관련 규명이 없는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당장 규정이 없으니 특별조사위 활동기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특별조사위 활동기간을 올해 6월까지라고 보고 예산도 그때까지만 배정한 상태다.

반면 특별조사위는 인양 이후까지 조사활동을 해야 한다며 올해 말까지는 조사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수부는 7월 말 인양을 예정하고 있다. 자칫하면 특별조사위는 진상규명을 위한 중요한 증거물인 인양된 선체를 조사할 수 없게 될 판이다.

미수습자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는 “세월호진상규명법 제정 당시 미수습자와 인양을 넣지 않은 후폭풍이 특별조사위에 미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일반인 미수습자에게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이금희씨는 “미수습자 권재근씨와 그 가족은 제주사람”이라며 “제주도에서는 신경 쓰는 사람이 거의 없고 대부분 안산사람이 많다 보니 더욱 소외돼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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