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노동조합 설립을 합법화한 대법원 판결이 무력화될 위기에 처했다. 고용노동부가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이주노조)의 설립신고증을 재차 보완 요구하면서 대법 판결에 몽니를 부리고 있는 탓이다. 이에 항의해 이주노조는 27일 서울시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노조는 이날 오전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차례에 걸친 노동부의 이주노조 규약 보완요구는 노조 탄압인 만큼 규약을 개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동부가 설립신고증을 발급할 때까지 노숙농성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의 무리한 보완 요구 응할 수 없어”

노동부는 지난 7일 이주노조 규약 보완을 주문한데 이어 23일 공문을 통해 다시 보완을 요구했다. 노조는 지난 19일 총회를 열고 규약 2조(목적) 등을 개정해 20일 노동부에 제출했다. “본 조합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추방 반대”라고 적힌 규약 일부를 “본 조합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및 노동권을 보장”으로 개정했다.

노동부는 이주노조 규약에 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4호 마목(정치운동)에 해당한다며 보완을 요구했는데, 노조가 이를 받아들인 셈이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규약 보완 후에도 여전히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정치활동이 노조설립 목적임을 명시했다”며 “다음달 12일까지 노조법 제2조에 맞게 수정해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노동부는 또 지난 19일에 열린 이주노조 조합원 총회에서 출석한 재적 조합원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주문했다.

박진우 이주노조 사무차장은 “설립신고증을 받고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하기 위해 노동부가 문제 삼은 규약 일부를 고쳤다”며 “이주노조 설립 목적인 규약을 더는 고칠 수 없고, 총회에 참석한 조합원 명부도 제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10년 기다린 설립신고증 또 반려?”

노동부가 2차례에 걸쳐 이주노조 규약 보완을 주문한 것과 관련해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주노조는 “대법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법적근거가 없는 조합원 명부 제출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며 “당연히 나와야 할 노조 설립신고증이 지연되는 것도 부당하고, 규약이 정치운동이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 노동자들은 아파도 다쳐도 보호받을 수 없어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라며 “노동부는 10년간 기다려 얻어낸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여 설립신고증을 발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가 노조법 2조4호 마목을 지나치게 해석해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노조법이 정한 정치운동은 정당활동에 해당하는데 노동부가 노동조합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까지 정치운동으로 해석한 것은 행정기관 월권에 해당된다”며 “노동부 논리대로라면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반대하기 위한 노조 투쟁도 정치운동에 해당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권 변호사는 “노조는 대법원 판결을 받기 위해 10년을 기다렸는데 노동부가 설립신고증을 반려하기 위해 규약 보완 요구를 한다면 비열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주노조가 노동부의 규약 보완 요구를 거부한 만큼 이주노조 설립신고증은 반려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주노조와 노동부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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