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밤 동서울우편집중국 특수계에서 직원들이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규직은 전동차량을 타고 각종 우편물이 든 ‘팰릿’을 옮긴다. 정기훈 기자
우편물을 실은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간다. 생김새가 공항 수하물 컨베이어벨트를 닮았다. 그런데 크기가 압도적이다. 높이가 건물 천장에 닿을 듯하다. 문어발처럼 생긴 투입구에 우편물을 넣으면 우웅~ 우웅~ 하는 기계음을 내며 벨트가 움직인다. 롤러코스터가 정점을 향할 때처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이때 벨트 측면에 설치된 센서가 우편물에 붙어 있는 바코드를 인식해 주소지를 구분한다. 정점에 올랐으니 이제 내려올 차례. 주소지별로 구분된 우편물들이 각자의 출구를 찾아 움직인다. 어떤 것은 대전으로, 어떤 것은 부산으로 목적지를 향해 간다.

지난 23일 밤 10시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 소포계의 광경이다. 우편집중국은 쉽게 말해 우편물이 머물다 떠나는 터미널이다. 택배업체의 물류창고와 비슷하다. 서울 동부권에서 전국으로, 또는 전국에서 서울 동부권으로 오가는 모든 우편물이 이곳 동서울우편집중국을 거쳐 간다.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를 중간에 두고 노동자들의 손발이 분주하다. 집중국 노동자들은 주로 우편물을 운반하고 구분하는 일을 한다. 팰릿(pallet)이라고 불리는 우편물 운반수레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우편물을 끌고 와 컨베이어벨트에 올리고, 컨베이어벨트에서 지역별로 구분한 우편물을 가져와 다시 팰릿에 담아 끌고 간 뒤 차에 싣는다. 성인 남성 키만 한 높이의 팰릿에는 총 600킬로그램 중량의 우편물을 담을 수 있다. 바퀴 달린 수레를 사람이 끌면서 왔다 갔다 한다.

이날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짐을 실은 마지막 차는 밤 10시20분에 출발했다. 하지만 업무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짐들을 구분해야 한다. 몰려오는 우편물의 행렬 속에 노동자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업무에 집중할 뿐이다. FM 라디오 소리만 노동의 침묵을 메우고 있다.

전동차 타면 정규직, 서서 일하면 비정규직?

<매일노동뉴스>가 찾아간 동서울우편집중국에는 우정사업본부 소속 우정직 공무원(정규직) 88명과 우정실무원 407명이 함께 일한다. 실무원 중 무기직 284명을 제외한 123명은 비정규직(기간제·시간제)이다.

그런데 특별한 유니폼 없이 일상복 차림으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우편물을 구분하고 운반하는 업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돼 근무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기는 하다. 정규직은 팰릿에 실린 짐을 나를 때 소형 전동차를 타고 움직인다. 한 손으로는 전동차 핸들을 돌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팰릿을 끌고 간다. 반면 비정규직은 팰릿을 밀면서 걸어간다. 육안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그뿐이었다.

하는 일이 비슷하니 처우도 같을까. 물론 아니다. 정규직은 공무원 호봉을 적용받는다. 비정규직 실무원은 등급에 따라 4만1천680에서 4만3천360원의 일급(시간제는 시급 5천400원에서 5천910원)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에게 지급되는 정근수당·정근수당가산금·가족수당·직급보조비·급식보조비·직무보로금·현업작업장려수당·자녀학비보조 등의 혜택은 비정규직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명절휴가비나 평가성과급·복지포인트도 차등적으로 지급된다.

'발등의 불'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예를 들어 왼쪽 바퀴는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는 비정규직이 조립하는 자동차 공장이 있다. 정규직의 시급은 1만원, 비정규직의 시급은 5천원이다. 이런 경우 비정규직은 “차별을 당했다”고 인식하게 된다. 억울함을 느낀 비정규직 앞에는 두 갈래 선택이 있다. 그냥 참거나, 노동위원회에 찾아가 차별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때 노동위가 “차별이 맞다”고 인정하고 사용자에게 차별시정명령을 내리면, 사용자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불합리하게 차별받아온 임금을 물어줘야 한다. 시정명령을 거부한 사용자는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여기까지가 현행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의 골자다.

그러나 올해 9월19일부터는 달라진 제도가 시행된다. 노동위(또는 근로감독관)가 차별을 인정하면, 사용자는 비정규직이 차별받아온 임금·근로조건의 3배를 물어줘야 한다. 5천원을 차별한 사업주는 1만5천원을 물어내야 한다. 이른바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해당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 ‘징벌적’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듯이, 비정규직을 차별한 사업장을 혼내 주겠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다. 혼나지 않으려면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라는 것이 제도를 도입한 목적이다. 우편집중국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돼 근무하는 사업장의 경우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현재 전국의 우체국과 우편집중국에는 5천285명의 실무원이 일하고 있다. 이 중 무기직 1천708명을 제외하더라도 시간제와 기간제가 3천577명이나 된다. 대다수가 우편집중국 소속으로 차별시정 대상에 걸릴 수 있다.
집중국에 도착한 우편물 더미를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정기훈 기자

소포를 우편물 자동 분류 컨베이어벨트로 옮기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공공기관 너마저 … 차별시정 피하기 ‘꼼수’

우편집중국을 총괄하는 우정사업본부는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대책을 모색 중이다. 문제는 현재 마련되고 있는 대책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입수한 ‘우편집중국 인력구조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두 집단 사이의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보고서는 우정사업본부가 한 노무법인에 의뢰해 작성한 것인데, 정규직은 관리업무에 집중배치하고 비정규직은 우편물 구분업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직무를 분리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실제 우정사업본부는 이러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직무를 나누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공무원과 실무원이 혼재돼 근무하고 있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 컨설팅 결과였다”며 “비정규직 실무원들이 차별시정신청을 내면 우정사업본부로서는 막대한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를 구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인정했다. 우체국 사업에서 우편사업 비중이 줄어들고 적자 폭이 늘어나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편집중국 실무원들이 차별받아온 금전 총액은 얼마나 될까. 우체국 사업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막대한 금액일까.

우정사업본부가 자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비정규직 실무원들은 유사업무를 하는 정규직과 비교해 405억원에 달하는 금전적 차별을 받았다. 지난해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특별회계 총 지출액 3조5천671억원의 1.14%에 불과하다. 공공기관인 우정사업본부가 비정규직 차별개선이라는 정도를 버리고, 제도를 피해 가고자 우회로를 택한 이유다.

“정규직은 무슨 죄냐” 업무혼선 가중

우정사업본부의 직무분리 계획이 현실화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직무를 구분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점이다. 핵심 업무인 우편물 분류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떼어 줄 경우 비정규직과 섞여 일해 온 정규직들이 갈 곳이 줄어든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들에게 관리직 업무를 맡기겠다는 구상이지만, 전국 1천408명에 달하는 우편집중국 소속 우정직 공무원을 전원 관리직으로 흡수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연구용역 보고서도 정규직-비정규직 직무분리가 시행될 경우 단기적으로 200여명, 장기적으로 500여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전환배치 같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우정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이유다. 김명환 우정노조 위원장은 “비정규직 차별개선은 하지 않고 정규직 근무환경만 악화시키는 꼴”이라며 “우편업무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춘 정규직들을 대거 제외시키면 우편서비스의 차질을 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본질적으로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남는다. 차별시정제도는 동종·유사업무 정규직이라는 비교대상이 있을 때 성립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를 분리해 버리면 비교대상 자체가 사라진다.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처우개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비정규직의 무기직 전환을 추진하고 일부 수당을 신설하는 등 처우개선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처우개선의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종착지는 우편업무 아웃소싱?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편물 분류업무를 비정규직 전담업무로 독립시킬 경우 이 부분만 떼어 내어 아웃소싱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미 우정사업본부는 택배업무에 대한 외주화를 진행 중이다.

실무원으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연맹 전국우편지부 동서울우편집중국지회 이중원 사무국장은 “우정사업본부가 인력 효율화 차원에서 작은 우체국을 폐쇄하는 등 조직의 슬림화를 추진하고 있고, 택배업무의 일부가 민간업체로 넘어간 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집중국의 업무 역시 아웃소싱될 개연성이 높다”며 “외주화된 택배업무의 사례만 봐도 고용불안과 노동강도 강화는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실제 민간위탁된 택배업무 종사자들은 시급이나 월급이 아닌 ‘건당 수수료’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낮은 운송 수수료로 생계를 꾸리려면 최대한 오래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상자기사 참조>

우편집중국의 사례는 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사용자들은 법을 피해 갈 궁리부터 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는 9월을 전후해 새로운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예컨대 대학교 청소노동자 가운데 학교에 직접고용된 청소원과 도급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된 청소원 사이에 임금·근로조건의 차이가 날 때, 이에 대한 차별시정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차별시정신청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비정규직 차별개선에 나서는 것은 헌법적 권리를 수호하는 일이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차별시정제도 도입 초기에는 차별을 당한 비정규 노동자 본인이 차별시정신청을 제기해야 했는데, 이제는 차별을 당한 노동자의 신청이 없더라도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직권으로 차별 여부를 조사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며 “정부가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 한 차별액의 3배를 물어준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구은회 기자

윤성희 기자

 

우편업무 외주화의 ‘오래된 미래’ 위탁택배기사들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건당 수수료 받으며 장시간 노동 … 택배업체 ‘갑의 횡포’에 눈물



우정사업본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를 분리해 지금의 우편업무를 비정규직 전담업무로 떼어 내더라도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이나 고용환경이 곧바로 열악해 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아웃소싱(외주화)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2002년 우체국 택배사업을 시작하면서 택배배송업무의 일부를 민간에 위탁했다. 우체국이 민간택배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민간업체와 위탁택배기사들이 다시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위탁의 재위탁’ 형태다.

위탁택배기사들은 우체국 마크를 단 차량을 몰고 집배원과 똑같이 택배를 한다. 하지만 우체국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차량도 개인 소유다.

택배 한 개당 수수료로 임금이 책정되는데, 수수료는 택배 무게별로 920원에서 1천300원 사이에서 결정된다. 위탁택배기사로 구성된 전국우체국위탁택배조합에 따르면 하루에 택배 130개를 배달하면 한 달에 27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차량할부금과 기름값 등을 빼면 실수령액은 120만~170만원에 그친다.

서울 여의도우체국에서 위탁택배기사로 일하는 한강희(45)씨는 “지난해 5킬로그램짜리 택배 1개당 960원을 받았는데 그게 서울에서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며 “수수료가 너무 낮다 보니 무리를 해서라도 택배를 많이 배송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우정사업본부와 민간택배업체의 이른바 ‘갑의 횡포’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민간업체들은 지난해 위탁택배기사들에게 우정사업본부가 제시한 ‘택배위탁 표준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표준계약서에는 “기사들의 모든 단체 결성, 활동을 금지한다”, “모든 손실은 기사가 책임진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노동관계법과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반하는 내용이다. 민간택배업체들이 관리비나 수수료 명목으로 떼어 가는 중간착취 문제도 심각하다. 위탁택배기사들의 열악한 현실은 우편집중국 비정규직의 ‘오래된 미래’다.
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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