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보
전교조 정책교섭국장

추석연휴가 끝난 지난 23일 월요일 아침.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관이 전교조 사무실에 찾아왔다. 흐뭇한 소식도 기쁜 소식도 아니었다. 전교조 설립취소 방침을 통보하기 위해 왔다.

전교조를 방문하는 고용노동부 관료 3명과 서울남부지청 직원 2명이 들어오는 모습은 겁먹은 듯도 하고 비장한 듯도 했다. 그들을 맞이하는 전교조 조합원들은 그들을 위원장실로 맞이했다. 설립취소방침을 통보하러 오는 사람이 ‘갑’이고 그것을 받는 전교조가 ‘을’이어야 하는데, 전교조가 갑이고 노동부가 을인 것 같은 묘한 분위기였다.

실정법을 집행해야 한다는 노동부 관료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정부가 법을 어겼다고 주장하는 전교조는 오히려 당당했다. 누가 보면 정부가 법을 어기고 전교조가 이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정당성이 없는 법을 들이대면서 24년의 역사성을 가진 노조에 설립취소 방침을 통보한 공무원들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노동부가 노조의 편이 아니라 노조를 탄압하는 도구가 되는 현실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1960년 교육 자주성 회복과 학원 민주화를 외치면서 4·19 교원노조가 탄생했다. 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교원노조 탄압에 나섰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른바 4·19 교원노조 간부 1천500여명을 용공인사로 몰아 구속했다. 89년 전교조 결성을 전후해 해직된 인원도 1천500여명이었다.

당시 문교부 장관은 61년 6월8일 “교원노조가 민주당 정부를 전복하고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던 음모가 발각됐다”고 발표했다. 결국 5·16 쿠테타 직후 4·19 교원노조는 불법화됐다. 99년 전교조가 합법화될 때까지 역사 속에 묻혀 있어야 했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전교조가 99년 합법화 이후 14년 만에 설립취소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한국의 기득권 계급은 교원노조를 모질게 대하고 있다. 교육 자주성 회복과 학원 민주화를 외치면서 출범한 4·19 교원노조의 역사는 학생들의 죽음 앞에서 참교육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전교조의 역사로 이어졌다. 4·19 교원노조가 용공으로 몰리면서 공안탄압의 대상이 된 것처럼 전교조도 법을 어기는 단체로 매도되고 공안탄압의 위기에 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4·19 교원노조를 무력화하고,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전교조 설립을 취소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매의 눈으로 정부가 전교조를 탄압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전교조는 특권경쟁교육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해 왔다.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강요하는 행위를 단호히 거부하며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로 10명에 가까운 교사가 아이들 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전교조는 또 자사고와 특목고 같은 특권학교를 반대한다. 요즘은 국제학교와 학부모 등급제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는 군인학교·삼성학교 등 기업형 특권학교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특권학교는 일반학교를 황폐하게 만들고 교육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제도다.

전교조는 요즘 교학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전쟁에서 최전선에 나와 있다. 정부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하고,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미화하는 교육을 하려고 한다.

일제고사·특권학교·친일독재 미화 역사 교과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것들이 무엇이기에 전교조는 철저하게 원칙적으로 반대해 왔는가. 세 가지는 식민지 청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기득권 세력의 산물이다.

전교조는 기득권 세력에 반대하고 평등한 참교육을 위해 노력해 왔다. 전교조를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고 전교조가 없었으면 하는 세력은 당연히 반민주적인 기득권 세력이다. 반민주적인 기득권 세력은 전교조가 지향하는 사회와 맞지 않는다. 결국 전교조는 그들의 반민주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가장 강력한 걸림돌 중 하나다.

전교조 설립취소 문제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꾸민 일이다. 전교조에 굴종을 강요하면서 무력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근 조성한 공안정국을 바탕으로 사회 곳곳을 탄압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건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를 기만적으로 반려했다. 한마디로 비민주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문제로 불거진 일련의 사건을 매개로 민주주의 세력을 탄압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넓혀 가려 한다.

특히 8월 초에는 공안검사 출신 김기춘 전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전교조와 교육부는 같은달 8일 단체협약을 위한 예비교섭을 타결했다. 2010년 이명박 정부에 의해 해지된 단협을 정상화하는 단체교섭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8월 말 교육부의 태도가 돌변했다. 본교섭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이어 교육부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노동부가 어떤 조치를 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노동부는 연락도 없다가 9월16일께 담당 국장이 23일 전교조를 방문하겠다고 통보했다. 담당 국장은 23일 전교조를 찾아 설립을 취소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공문을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전교조는 "공문서를 인편으로 전달하는 경우는 없다. 우편으로 다시 보내라. 법원에서 하는 것과 같이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노동부 관료들은 뭔가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팩스와 우편으로도 보내겠다"고 했다. 23일 오후에는 "팩스를 보냈으니 확인해 달라"는 전화가 두세 번 왔다.

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5월과 6월에 전교조와 설립취소 문제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5월에는 공무원노사관계 담당 과장이 새로 발령을 받아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게 '협의'라는 것이다. 6월에는 새로 바뀐 공공노사정책관이 전교조를 예방했는데, 그것까지 '협의'라고 포장하고 있다.

청와대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등장한 이후 일련의 사건이 철저한 기획에 의해 진행된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녀 논란을 일으키며 검찰총장을 자신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전교조 설립취소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권 입장에서 채 총장에게 혼외자녀가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 되지 않는다. 검찰총장을 물러나게 하면 된다. 전교조 설립취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법적인 문제, 예를 들어 현행법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전교조를 법외로 몰아내서 탄압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교조에 대한 음해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이다. 끝내는 4·19 교원노조 사례와 같이 용공조작 등의 방법을 동원해 전교조를 탄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노동자와 싸워 이긴 정권은 없다. 시간이 걸릴지언정 노동자는 반드시 승리한다. 역사는 반복되지만 이번만큼은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튼튼한 연대와 굳건한 투쟁의지가 반노동·반민주적인 탄압을 이길 수 있다. 전교조의 투쟁은 탄압으로 다가오지만 종국에는 아름다운 노동자 세상으로 가는 전진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