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와이퍼를 생산하는 H사에서 일하는 김지은(35·가명)씨는 최근 입맛이 사라지고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 병원을 찾았다가 열허탈증(열피로)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수면부족에 심한 기분변화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다. 김씨가 일하는 도장공장은 페인트를 말려야 하기 때문에 온풍기가 가동되는데 요즘 같은 더위 속에 수온계가 최고 50도까지 치솟는다고 한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으로 작업장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1일 기상청에 따르면 울산시는 여드레째 섭씨 35도를 웃도는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울산시 낮 최고기온이 38.8도를 찍으면서 1932년 1월6일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81년 만에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됐다. 특히 화학공장이 밀집해 있는 울산시 남구 고사동의 기온은 40도를 오르내렸다.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릴 만큼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기상재해로 꼽힌다. 기상연구소에 따르면 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94년 우리나라에서만 폭염으로 3천384명이 사망했다. 59년 사라호 태풍 피해 사망자 768명보다 5배나 많은 숫자다.

특히 작업장은 폭염 피해에 취약하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폭염 대비 사업장 행동요령'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행동요령에 따르면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경우 사업장에서는 노동자가 편한 복장으로 근무하고 휴식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어야 하며, 매 15~20분 간격으로 시원한 물 또는 식염수를 1컵 정도 마실 수 있어야 한다. 또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실내·외작업을 일시 중단하고 자주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의 행동요령은 '권장' 사항이지 '의무' 사항은 아니다. 실제 일터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H사는 최근 작업장 온도가 50도를 오르내리면서 환자들이 발생한 이후에야 1시간 근무시 15분 휴식을 주기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해는 충북 청주의 한 초등학교 급식소 보수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강아무개(28)씨가 35도가 넘는 날씨에 야외작업을 하다 열사병으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김수정 시화 사회노동정책연구소장(공인노무사)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고온 등 이상기온을 작업장 유해요인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최고 온도 제한 등의 조치는 없다"며 "해가 갈수록 무더워지는 만큼 관련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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