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염 속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잇따라 질식사망하고 있다.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서 정화조 청소를 하던 노동자 5명이 유독가스에 질식해 쓰러져 1명이 숨지고 4명이 중태에 빠졌다. 이튿날인 21일에는 경북 경주시 돼지농장 정화조에서 노동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밀폐된 정화조에서 일하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마다 18명 노동자 질식사망

22일 고용노동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올해 5월에도 경기도 평택시 돼지농장 정화조 내 배수작업을 하던 외국인 노동자 2명이 정화조 내에서 질식했다. 농장주와 아들이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정화조에 들어갔고, 결국 4명 모두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부는 2000~2009년 10년간 질식사한 노동자가 189명에 달하며, 부상자도 54명에 이른다고 밝혔다.<표1 참조> 해마다 평균 18명 이상의 노동자가 질식사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질식사는 더운 여름철에 집중됐다. 2000~2009년 10년간 월별 질식 사망재해 현황을 보면 6~8월에 절반에 가까운 80명(42.3%)이 질식사한 것으로 조사됐다.<표2 참조>

노동부는 “여름철에는 기온이 상승하고 집중호우가 잦아 밀폐공간에서 미생물이 단시간에 쉽게 번식돼 유해가스가 다량 발생하고 산소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며 “이 때문에 여름철에는 밀폐공간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질식사망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밝혔다.

 


맨홀·오폐수처리자 등 밀폐공간 주의해야

질식사는 대부분 밀폐공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경기도 구리시 양묘장에서 꽃 가꾸기 희망근로 사업에 참여했던 노동자 2명이 양묘장 내 양수펌프 작동 상태를 확인하러 맨홀 내부에 들어갔다가 질식해 사망했다. 같은달 강원도 동해시 해양심층수펌프장 공사현장에서 양수작업용 가솔린 펌프에 휘발유를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 1명이 맨홀에 내려갔다가 질식해 사망했다.

이 같은 사고의 공통점은 여름철 밀폐공간에서의 질식사망이라는 점이다. 밀폐공간은 자연상태에서 환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유기물 부패 등으로 산소결핍과 질식성 유해가스가 발생해 질식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이러한 공기를 작업자가 들이마시게 되면 매스꺼움·어지러움 등의 증상과 함께 그 자리에서 쓰러지게 된다. 대부분은 공기 흡입과 동시에 의식상실·경련 등을 일으키며 질식해 사망하게 된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0~2009년 작업내용별로 질식 사망재해 현황을 보면 맨홀이 47건(24.9%)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오폐수처리장 42건, 저장탱크·화학설비 26건, 선박내부 29건, 배관내부 14건, 연소기구 사용 12건, 음식물 저장호퍼(압축기) 3건 등의 순이었다.<표3 참조>

영세업체 밀폐공간 작업, 핵심은 사전예방

여름철 폭염 속에서 질식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해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하면서 안전보호구 착용이나 환기 등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작업 전 밀폐공간 내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 측정 △작업 전·작업 중 환기 실시 △밀폐공간 구조작업시 보호장비 착용 등 밀폐공간 3대 안전작업 수칙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밖에도 감시인 배치·인원점검·안전장비 구비 등 비상시 조치요령을 반드시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료작업자가 질식해 쓰러질 경우 호흡용보호구가 없으면 직접 구조하려고 하지 말고 관리감독자 또는 119구조대 등에 구조를 요청하도록 했다. 노동부는 정화조·맨홀·저장탱크 등 밀폐공간 내에서 질식 사망사고가 집중 발생하는 6~8월 동안 밀폐공간 작업이 예상되는 사업장과 현장을 대상으로 집중 지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밀폐공간 질식재해 사업장에서 자체 예방할 수 있도록 사업장이나 현장에 대한 교육이나 기술지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전국 25개 일선 지도원에서 사업장 질식사고 예방을 위한 산소농도측정기·유해가스농도측정기·공기호흡기·마스크·이동식 환기팬 등의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하고 있다.

노동부 23일 밀폐공간 작업지침 발표

그럼에도 질식 사망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사업주와 노동자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밀폐공간 작업은 영세업체에서 실시하고 지속적 작업이 아니다 보니 정부의 지도점검이나 교육·홍보 등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진우 노동부 안전보건정책과장은 “영세업체의 밀폐공간 작업시 안전작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업주나 근로자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질식사를 줄이기 위해 교육·홍보와 지도점검·연구용역·지자체 협약 체결 등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최근 질식사가 잇따라 발생한 데다, 다음달까지 무더위가 이어질 것이란 예보에 따라 23일 전국 47개 지방관서와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밀폐공간 작업업체 파악과 홍보·교육을 강화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의 지침을 내려보낼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최근 밀폐공간 질식재해는 대부분 정화조나 농가 등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 같은 작업의 위험성을 잘 몰라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밀폐공간 작업은 방법만 알면 예방이 쉽기 때문에 각 지방노동관서와 안전보건공단에 이를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교육할 것을 지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세업체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점검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안전보건연구소 국장은 “밀폐공간 질식재해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길 게 아니라 해당 업체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며 “생명과 직결된 것인 만큼 정부가 소규모 사업장에 안전수칙이 담긴 포스터를 붙이도록 하고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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